내 곁엔 당연히 엄마나 아버지가 계셔야 하는 줄 알고 살다가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고향에서 그리 멀지않은 도시로 떠나오던 날
열 두살 어린 마음에 엄마 아버지 곁을 떠난다는 사실이 얼마나 서럽던지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행여 누가 볼까봐
덜컹거리는 버스의 차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옷소매로 훔쳐내던 때가 생각납니다.
낮선 도시에서 첫날 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눈물로 베갯니를 적시다 잠이 들고서
다음날 아침에 나 보다 두살 위인 누나가
"네 눈두덩이 왜 그렇게 부었냐?"며 내게 물었을 때
나도 모르겠다는 듯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 붉히던 일도
아직까지 기억속에 또렷히 남아 있습니다.
곁을 떠나오는 마음이 서럽고
살아계실 때 곁에 있지 못함이 서럽고
돌아가실 때 배웅하는 마음이 서럽고
내가 살아 의식이 깨어있는 날까지사무친 그리움에서럽디 서러워
가슴으로 부를 때마다코끝이 시큰해지고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내가 죽는 날까지내게 있어선 언제까지나 엄마이고 아버지라서
생각날때면 어
김없이 가슴이 먼저 아려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기다림 속에 애틋한 그리움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갑니다.
기다림에 있어
언젠간 와 줄 이를 기다리는 일이 설레임과 기쁨일 수도 있으나
오지못한다는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일이애처로울 수도 있으나,
어쩌면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를 엄마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어린아이의 기다림만큼서글픈 일도 이 세상엔없습니다.
산수유가 있는 마을에서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봄바람에 실려옵니다.
예전에 꽃이 피어나는때를 맞춰가끔씩 가 봤던 동네였지만
올 핸 그동안 봐 뒀던 풍경을 사진속에 담아 볼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따지고 보면기대에 한껏 부푼 기다림을 하고 있던 셈이었습니다.
산수유(山茱萸)의 꽃은
하나를 놓고 보면 그처럼 볼품없는 꽃도 드믈 뿐만 아니라
꽃 색갈 또한 개나리처럼 화려한 노란 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맑고 깨끗함을 느낄 수 있는 빛깔도 아니라서
다른 꽃들 처럼한송이를 확대하여사진으로 담아 놓고서(접사) 보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이른 봄에 깊은 산골에서 무리지어 피어나는 꽃이
마을과 잘 어우러져 있는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그 하차잖은 꽃들이 연출해 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오곤 합니다.
"올 핸 꽃셈추위가 없어서 꽃이 이처럼 좋은 해도 드물다"는
동네 주민의 귀뜀을 웃음으로 답례를 하고서
마을 앞 으로 흐르는 개울을 오가며 이곳저곳카메라를 들이댈 때
바위에 걸터앉은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어린아이가 앵글에 잡혀지자
셔터를 몇 번 눌러대고선 그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청바지에 운동복을 걸쳐입은 아이는
내가 다가가는 줄도 모른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은
왠지외롭고 쓸쓸함이 짙게 베어있는느낌이었습니다.
"너 이동네 사냐?"
놀란 듯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쑥스러운 듯 고개를 떨구고선
내가 묻는 말마다짧은 대답으로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사실과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오지 않는다며
산수유가 피어있는 나무숲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 가는 뒷모습까지도
쓸쓸하기 그지없습니다.
해가 저물어산골마을에 밝은 빛이 사라질 때를 맞춰
함께온 일행들이 마을 어귀에 있다는 연락이 와서 그곳으로 갔더니
포장마차 한켠에 자리를 잡고서 막걸리를 한 사발씩 들이키며 갈증을 달래고 있습니다.
아무런 걱정없이 술을 마셔댈 때만 같으면
이럴 때 막걸리 한 사발쯤 벌컥벌컥 들이켜서
갈증도 삭히고허기진 뱃속까지 채우련만
지금은 한갖 마음일 뿐입니다.
술잔이 빌 때마다잔을 채워주며
이미 식어버린 어묵 그릇에 숫가락질만 해대고 있을 때
팔순이 가까웠을 한 노인네가 우리가 앉아있는 포장마차로 다가 오시더니
한 아이를 향해 "옥수수 하나만 집어 가라" 하시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고 계십니다.
옥수수를 집어 드는 아이를 보는 순간 조금 전에개울에서 봤던그 아이라서
"얘야! 그 포장마차에서 제일 큰 놈으로가져가라, 옥수수값은 이 아저씨가 낸다"면서
할아버지에게 "개울에서 사진을 찍었던 아이라서제가 하나사 주고 싶습니다"라고 했더니
옆에 계시던 한 할머니께서 다짜고짜 "좋은 일 하셨수"라며 고마워 하십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네살때 돌아가시고 얼마 안 있어
엄마마져 아이를 버려두고 떠나버리자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아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키우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바늘에 찔린듯 몹시도 가슴이 아파서 두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마을 앞 개울의 바위에 걸터앉은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던 슬프디 슬픈 모습은
금방이라도 올 것 같은 친구를 향한 기다림이 아니라
아주 안 올지도 모르는 엄마를 향한
애틋한 기다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쉰이 넘은 이 나이에도 가슴으로 부를 때마다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촉촉해 지려는데
그 아이에게 있어 엄마는 얼마나 큰그리움과 기다림일런지
나로선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일입니다.
엄마란 이 세상 누구에게나그리움이라는 걸 깨닫기 까지는
그 아이가 앞으로도 산수유 꽃이 몇 번이나 피고지는세월을 보내야할런지는 모르겠으나
꽃이 떨어져 아픈 자리마다 알알이 맺힌 산수유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 것 처럼
그 아이의기다림과 외로움이슬픔과 증오가 아닌
애틋한 그리움으로 승화되어잘 영글어 가면 좋겠습니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그곳을 떠나 와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개울에 앉아있던 아이의 쓸쓸한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지만
날이 갈 수록 희미해 지고 말일이라서 마음에 두질 않습니다.
행여, 산수유가 피어날 무렵이면
외롭고 쓸쓸한한아이의 모습을떠올리며 가슴아파 하거나
다시 그 동네를 찾을지도 모르겠지만...........
2008,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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