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설과 선물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8. 2. 3. 20:52

해마다 명절을 앞에 두고선
인사가 필요한 곳이 어디며
마음을 무엇에 담아 보내면 좋을지 궁리를 하곤 합니다.

내 어렸을 적 내 아버님 어머님께선
설이나 추석이면 큰집 어르신께 닭이나 달걀 꾸러미를 명절 선물로 보내셨고
나 역시 가정을 이룬 이후부턴
신세를 졌거나 고마운 이들에게
조촐한 선물을 준비해서 마음을 담아 보내곤 했습니다.

선물이란 주거나 받을 때서로에게 부담스럽지 않아야 함은 물론

주는 즐거움과 받는 기쁨이 함께 해야 할 일이라서

명절을 앞에 두고선적당한 게 무엇이 있을까 두리번 거리지만

마음에 와닿는것을 선택하기가쉽지는 않습니다.

설 인사란
지난 한 햇동안 내게 베풀어 준 관심과
원했든 원치않았든 간에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새해에도 건강과 소망이 이뤄지길 바램하는 의미라서
내 경우에 있어선 추석 보다는 설 선물에 더 신경이 쓰이곤 합니다.

몇 달 전, 시외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때마침 배가 고파서 요기나 할까 하며
작은 면소제지 거리의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꽤나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한 식당으로 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런데식당에 들어서면당연히 있어야 할 주인의 손님맞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음에도 누구 하나 다가와서
주문 받을 기미조차 없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곳에서 바삐 일을 하고 있던 한 아짐에게 물었더니

고기를 먹으려면 바로 옆에 있는 농협 매장에서 직접 사 와야 하고
식당에서는 고기를 먹는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서 실비만 받는

농협 직영 식당이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아짐이 일러준 대로농협 매장에 가서 고기를 사 와 먹어보니
육질도 괜찮을 뿐만 아니라
일반 식육점 보다 최소한 3~40%는 싼 가격이라서
떠나올 때 몇 근을 더 사서 집에 갔다 준 적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오려는 나에게
올 설엔 선물을 쇠고기로 하면 좋겠다며
혹시 틈이 나거든 예전에 고기를 사왔던 곳에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묻습니다.

일부러 갈 일은 없으나나서기만 하면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라서

일행 한 사람과 함께 그곳으로가서 보니

매장 안에서 부터시작된 행렬이 매장의 밖에까지늘어 서 있어

별 수 없이 줄의 맨 끝에 서서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30분, 한 시간......
더딘 걸음마를 하며 가까스로 매장까지 들어서게 되면서 부터
앞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알게 되었지만
내 차례가 얼마남지 않았던지라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이밀며 들어오는
몇 명의 아짐들을 모른 채 하며

한 시간 반 만에필요한 만큼의 고기를 사서 돌아왔습니다.

만약 도시의 한 복판에서 그런 장면을 목격하거나
설이 아닌 평소에 엉덩이를 들이밀며 들어 올 경우엔
너그럽지 못한 내 성격에 한번쯤은 짚고 넘어갔을 텐데,
설 음식을 장만하다 왔노라며 미안스레 하는 시골의 아짐들을 볼 때
정겹기만 한 내 고향마을의동네 아짐들 생각이 나서
양보를 하고서도 조금도 기분이 언짢지가 않았습니다.

설이란

흩어져사는피붙이들이 다시 만나는 가슴 뭉쿨한 날이며
선물이란
따스한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줄과 같은 것임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순서나 질서 따지며 옹색해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흘만 더 있으면

함께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본 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하기만 한 내 아이들이

제 나름대론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 올설이라서

어렸을 때 아이들이 그랬던 것 처럼 손을 꼽으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힘겨워 할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사람들은 물론이고
의도하지는 않았으되 행여 나로 인해서 언짢았을 사람들과
나를 심난스럽게 했던 사람들까지도
모두모두가 행복한 설이면 좋겠습니다.


2008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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