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싼게 비지떡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8. 1. 29. 11:29

내 청년시절에
고모님께서 살고 계시는 바닷가 마을에 놀러 갔다가
동갑내기 사촌과 두부 만드는 집에 가서
두부 한 모씩을 배추김치에 싸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내 어릴적 부터 또 다른 이웃마을에 사는 피난민이라 불렸던 아저씨가
새벽마다 지게에 지고다니며 파는 두부를 가끔씩 사 먹긴 했어도
두부 만드는걸 직접 본 것은 고모님 동네에서 처음입니다.

두부를 만들려면
물에 불린 콩을 맷돌에 갈아서 찌꺼기를 거르고
이 콩물을 끓여서 바닷물과 섞으면 응고가 되는데,
네모진 나무상자에 깨끗한 천을 깔아 응고된 콩물을 부어 놓고
그 위에 맷돌을 올려 놓으면된다는 두부를 만드는 과정도

자세히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먹을 게 풍요롭지 않았던 때임에도
콩물을 걸러내고 남은 찌꺼기인 비지는 소나 돼지의 먹이로 준다기에
"왜 아까운 비지를 짐승에게 주냐"며 여쭈었더니
'소나 돼지도 먹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대답하며
웃으시던 아저씨의 모습도 기억속에서 가물거립니다.

먹거리가 부족했던시절에도소나 돼지에게 먹였던 그 비지를
직접 먹어본 적은 아직까지는 없으나
비지떡이라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속담 중에

싼 물건이라서 돈을 주고 구입했으나 사실은 형편없는 물건이었을 경우에

어김없이 인용되는 속담이 바로 "싼 게 비지떡"입니다.
옛날 먼 길을 가는 선비에게 주모가 싸 준 것이 바로
콩비지로 만든 비지떡이었다고 해서 그런 속담이 생겨났다는데
먹어보진 않았지만 맛이 별로 일 것 같다는어림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겨울철에 등산이나 출사를 갈 때마다

손과 귀가 시려운 게 제일 견디기 힘든 문제라서,
며칠 전 시내의 이름있는 제품을 파는 곳에 들러
마음에 드는 방한 장갑 하나를 골라 가격을 물어보니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비싸서 그만 되돌아 오고 말았습니다.

요즘엔 사소한 물건 쯤은 인터넷을 통해서 편하게 구입하곤 하던 터라
자주 들락거리는 인터넷 싸이트를 뒤적거리다
눈에 들어오는 방한장갑이 시내에서 봤던 가격의 1/10도 채 되지가 않아
최소한 이번 겨울만 나면 족하다는 생각으로 망설이지 않고 구매를 했습니다.

그리고 택배를 통해 이틀만에 도착한 장갑은
그림으로 볼 때 보다 보온도 잘 될 것 같고 품질도 훨씬 좋아보여서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습니다.

동료들과 태백산으로 산행을 갔던 날 새벽,
차가운 공기가 살갖을 파고 드는 느낌일 때 이
방한장갑을 손에 끼니
이 보다 더 한 추위에도 거뜬히 견뎌낼 것 같아
함께 간 동료들에게자랑을 하며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정상에 도착해서 시시각각 변하는 여명을 바라보며

해가 떠 오르기를 기다릴 무렵
왠지 장갑을 낀 손이 불편해지고
열 손가락 중에 몇 개가 더 시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 그럴까 하며 무심결에 장갑일 낀 손을 보는 순간

멀쩡했던 천이 찢어지거나 실로 꿰맨 자리마다 터지고
안에 들어있던내용물이 보기 흉하게 밖으로 삐져나와 있어
옆에 있던 동료들로 부터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새로 사서 반나절 낀 방한장갑)


집에 돌아온 그 다음날 아침
내가 물건을 샀던 그 인터넷 싸이트에 접속하여
망설이지 않고 결제승낙을 해서 출금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품질불량을 내세워얼마든지 반품도 가능했으나

내 자신이 판단하고 선택한 일을 두고

책임을 남에게 떠 넘기는 짓은 하기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를 하는 동안
틀린 속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자주 체험하며 삽니다.
다시 말해서 속담을 한갖 우스개소리로 여겨선
낭패를 보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도
속담속에 숨어있는 세상살이의 지혜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해서
지금처럼 씁쓰레한 일들을 숱하게 겪고 삽니다.

순진하다면 내가 지금껏 세상을 헛 산 꼴이고
미런하다면 타고난 것이라서
이대로 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운명처럼 여기며........

2008, 1, 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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