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모습 중에
매사에 의연하게 대처하며 당당하게 사는 사람들이 늘 부러워
그 모습을 닮거나 흉내를 내 보려고 하는데도
타고난 천성 때문인지 쉽지가 않습니다.
일상생활 중 오감에 거슬리는 것들을 접할 때마다
겉으로 표출하지 못할 경우엔 어김없이 안으로 쌓이고 말아서
이런 바람직스럽지 못한 생리를 바꾸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내 스스로를
가엾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한다는 건 세상살이에 있어 가장 바람직스럽지 않을 일이나
때와 장소를 가릴 줄 모르고 남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들까지도
감싸고 포옹할 줄 모르는 내 자신이 문제가 있는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불과 10여년 전 까지만 해도
하루종일 산 속을 돌아다녀도 사람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어서
이런 날 만큼은 호젓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나
요즈음엔 휴일이건 평일이건 상관없이
발에 채일 정도로 산길에서 많은 사람들과 스치다 보니
오르기 전에 갖는 산에 대한 신선감과 다녀온 뒤에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이
예전만큼은 아닙니다.
산에서 잠시 스치는 사람들 중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음질도 좋지않은 휴대용 오디오의 볼륨을 최대한 높힌 채 켜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어김없이 뽕짝 스타일의 노래입니다.
턱 아래까지 차오르는 숨을 잠시 고르려고 쉴만한 곳을 찾을 때
그런 자리에서 옆에 있는 사람들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공공장소를 가릴 줄 모르는 게 뻔할 일입니다.
좋은 공기를 마시러 산에 왔음에도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러 산에 왔음에도
찢어지는 기계음을 크게 켜서 시끄럽게 하거나
매케한 연기를 뿜어대는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산에 오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의 정상에 섰을 때
한번쯤 "야~호!!!"하고 소리를 내 지르며
가슴에 쌓인 무거운 것들을 밖으로 내 뱉어봤겠지만,
요즈음엔 산에 사는 나무와 산짐승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라며
다소곳이 왔다가 다소곳이 내려가곤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전엔 온갖 먹거리를 준비해와 산에서 직접 굽거나 끓여서
함께 온 사람들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권하기도 했지만
요즈음엔 간편식으로 끼니를 떼우는 게 당연한 일이며
과일껍질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주어오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변했음에도 이런 사람들의 의식속엔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소릴 들려주고 싶거나
옆에 있는 사람들도 그 분위기에 젖어있는 것으로 착각을 해서
그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이어폰을 끼고 혼자만 듣고 다니시는 게 어떻겠냐?"거나
"담배 연기 좀 안 맡으면 좋겠다"는 말로 내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만
나는 용기가 없어서 아직까지 단 한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일상에서 사람이 사람을 피하는 일은 비겁한 일일 수 있으나
할수만 있다면이런 사람들 만큼은
만나지 않고 살면 좋겠습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세상을 사는 일이
당사자에겐 편할 일일런지는 모르겠으나
남에게 불편을 끼치면서 까지 그러는 게 옳은 일인지
양식이 갖춰진 사람이라면 한번쯤 깊히 생각을 해봐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세상을 당당하게 사는 건 참으로 바람직스러울 일이나
그 당당함 속에 혹시 남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피해를 주는 일은 없는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일입니다.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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