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사는 동안엔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8. 1. 9. 06:04

눈이 수북히 쌓여있던 며칠 전
머릿속에 미리 그려놓은 그림을 생각하며
해질녘이 가까워오는 시간에 바삐 1100고지의서석대를 올랐다가
어두컴컴한 길을 뛰어내려왔던 일이 있은 뒤론
한 쪽 무릅이 시큰거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여간 신경쓰이지가 않습니다.

햇빛이 걷히기 전에 도착하려고
족히 6km나 되는 눈에 덮힌 오르막 길을 1시간 20분만에 뜀박질하듯 오르고
다시 그 길을 뜀박질 해서 1시간 만에 내려왔으니

산길에 익숙하다지만무리를 한 것 만큼은 틀림이 없습니다.

피끓는 청춘도 아니면서등에 짐을 지고서 뛰어내려 온
것은
이유야 어쨌든내 무덤을 내가 판 격이요
자업자득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휴일에등산을 포기하고 호숫가로 떠났던 이유가
편치 않은 무릅을 쉬어주려는 속뜻에서였지만
그런 사실을 내 입으로 주절거려 타박을 듣느니 보다는
입을 봉한 채 상태가 나아지길 기다다리는 게 더 나을 일이었습니다.


지난 해 여름날 몸에 붙어있는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는 걸 뼈져리게 체험을 했으면서도
망각한 채함부로 몸을 다루고 있다니
나는 참 답답하고 어리석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살아있는 동안 만큼은

내 몸에 붙어있는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해선 안된다는

경각심과 마음다짐을 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결코의미없는일은아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친척 장례에 참석하고 돌아 온 친구가

이해가 되지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이야기를 합니다.

자식들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화장하고선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없애버리더라며
지금까지 조상의 산소는 물론 제사까지도 깍듯이 모셔온 사람들이

그렇게 하리라고는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생명이 다하며 의식이 사라지는 순간엔
신체의 어느 것이든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라서

흔적을 남겨둔 채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 보다는

그렇게 하는 게 죽은 이에 대한 예의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가끔 '내가 죽거든 화장을 하라'면서도
화장하는 그 순간엔 뜨거울 것 같아서 걱정이라는 농담을 하며 웃곤 합니다.
그것은 내가 아직도 죽음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내 몸에 대한 집착이 크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만물은

죽는 순간부터 그 육신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어버릴지라도
살아있는 동안엔 어느 것 하나라도 잃어버리거나 온전하지 못할 땐
그만큼 불편을 감수하거나 고통을 받고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단 하루만 아프고 죽는 게
많은 사람들의 바램이라지요?

2008,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