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며칠간은
자꾸 조급한 마음만 앞서서 나가다 보니
제대로 되는 일도 그렇다고 안 되는 일도 없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늘 그랬듯이
묻고 잊어버려 좋을 일은 말끔하게 정리하여
올 해가 떠나갈 때 함께 묻어보내고 싶은 생각이나
어느 것 하나 말끔하게 마무리되는 일이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느 봄날에 시작된 주체할 수 없을 혼돈의 순간도
한 여름의 고통스럽기만 했던 역경도
가을의 의식이 정체된 채 지루하게 여겨졌던 시간들도
모두 떠나는 시간속에 묻어두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뜻을 함께 하며 동행이 되어주었던 정겨운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며 걱정해주는 내 가족과 형제들과 지인들의 고마운 마음들만
가슴속에 깊히 새겨놓은 채 새 날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무 자르듯 과거를 단절하거나 등에 진 짐을 부려버리듯 털어내고
홀가분하게 새 날을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아쉬운 일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리 못함을 낙담하거나 집착은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듯
무슨 일이 생겨날지 모를 새날을
그렇게 맞이하며 살아가면 될 일입니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수백 년 전에 쌓았다는 오래된 성 위를 걸으면서
"이 성을 쌓는 일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가 있을까?"하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행여 누가 들으면 한없이 어리석게 여길 이야기를
어린 아이들 조차도 물어보지 않을 뻔한 이야기를
정말 모르는 사람처럼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나도 당신도 때가 되면 죽는다는,
오늘 내가 걷는 이 길을 내일은 또 누군가가 걸을 거라는 분명한 사실 말고는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모른 채 성을 쌓거나
또 다시 이 성 위를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을 하지 못한 채 걸었으리라는
여러가지 잡다한 생각을 하면서
내 스스로에게 세상의 이치를 좀 더 또렷하게 각인시키려는 의미의 물음이었습니다.
연륜이 쌓여가는 만큼
삶의 무게 또한 늘어가는 게 세상의 일이라서
털어내지 못한 채 새날을 맞이한다고 해서 심난해 할 일은 아닙니다.
시작되지도 않은 새날에 있을 일들을 미리 생각하고 걱정하며 사는 것 보다는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이 순간의 평온함이 차라리 더 좋을 일입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숱하게 바램하며 살아왔지만
되는 것 보다는 안 되는 게 더 많았다고 여겨지는 게 사실이고 보면
새로운 날에 대한 바램과 기대 보다는
오늘을 아쉬움 없이 떠나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한다며
제 자신에게 타이릅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마음이라도 그렇게 고쳐먹은 채오늘을 맞이하거나
고쳐먹은 마음을 쫓아서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을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입니다.
2007,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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