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12층 남자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12. 20. 00:19

엘리베이터 안에 가끔씩 우유가 엎질러져 있을 때도 있고
빵부스러기나 바나나껍질 등이 지저분하게 버려지곤 해서
지난 여름 한동안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릴 때마다
심한 악취에짜증이 나곤 했었습니다.

여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누군가가 엘리베이터 벽에 향수를 걸어놓은 덕분에
악취로 인한 불쾌감과 불편은 조금 적어지는 것 같았으나
어떤 날엔 향수와 악취가 섞여 풍겨서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이 느껴질 때도 더러있었습니다.

이 처럼 엘리베이터가 지저분한 이유가
아이들이 음료수나 과자를 먹고 다니다 흘려서 그러려니 하고 짐작만했으나
어느날 한 아이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일이 있었던 뒤부턴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열 서너살 쯤 되어보이는뚱뚱한 여자 아이는
빵과 우유를 양손에 들고 번갈아가며 먹고 마시다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바닥에 쏟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럴 땐 아이들에게 그리 못하도록 훈계를 해야 마땅할 일이나

생김새나 하는 짓으로 봐서 정상적인 아이가 아님을알아차리곤
안쓰러운 마음에 그냥 지나쳤던 일이있었습니다.


2주전쯤의 일입니다.
아내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아주머니에게 부름을 받고 나갔다 오더니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를 내게 쏟아냅니다.

"엘리베이터의 감시카메라 영상에 보니
한 남자가그 아이의 가슴을 더듬고 얼굴을 문지르는데
아무레도 옆집의 남자가 확실한 것 같다"라고 합니다.

아내가 그 아이의 엄마로 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어느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한 남자가안에 있음을 보자마자

아이가 놀라서 도망을 치려기에무언가 이상하게 생각되어
감시카메라에서 녹화된 자료를 샅샅이 뒤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옆집 남자는 그 아이에게 "부모에게 이르면 죽이겠다며 칼로 위협을 하고
수차례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내용의 조서가 꾸며지고
그로부터 며칠 후 경찰서로 연행이 되어가서

현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옆집 남자도 성장배경이나 현재의 생활환경이 썩 좋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12살 때 어머니에 의해 벽돌공장에 팔려가서 줄곧 막노동을 하며 살아왔고
우리 아파트의 뒷동에 전 부인과 사이에서 난 두 아들이 살고 있으며
지금은 3년 전에 새로 만난 부인과 부인이 데리고 온 딸과 셋이 함께 산다는데
술을 마시면 폭력을 일삼아 부인이 많이 힘들어하는 모양입니다.

피해자 부모들 입장에선
이런 사람과 한 아파트에선 살 수 없다며
다른 곳으로 이사갈 것을요구한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이 일이 어떻게 마무리가 될런지는 모를 일일 뿐만 아니라
자폐아 부모도, 자폐아도, 옆집 남자도

모두가 안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참으로 당혹스러운 건
"12층 남자가엘리베이터 안에서 성추행을 했다"는 소문이
아파트에 쫙 퍼졌으니
또 한 사람의 "12층 남자"인 나로선 어쩌라는 것인지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마에 "나는 아님"이라고 써붙이고 다닐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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