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흔들거리는 삶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12. 15. 13:51

도덕과 윤리로 비춰볼 때
내새울 게 있을만큼 뼈대 굵은 집안에서 나고 자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신념이 올곧거나 규율이 엄격한 생활을 해 온 것도 아니면서
"양심에 크게 부끄러울 일 없이 살아왔노라'고 말을 한다면
그건 내 자신에게 또 한번의 거짓말을 해대는 짓일 뿐입니다.

그런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가끔씩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내자신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거나

더 나아가선 미화시키려는 짓을 해대곤 합니다.

양심이란길이나 무게를 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게 올곧거나비뚤어진 것인지 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이라서

자신의 양심을 앞세워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것은

옳거나 바람직스러운 일이결코 아닙니다.

어진 양심으로 내 삶을 뒤돌아 볼 때
부모님께 다 하지 못한 효에 죄스럽기 그지없고
내 아내에게 부끄러움에 대해서 단 한가지라도숨김없이 살아왔노라는
그런 당당함에 미안하기 그지 없으며
아이들에게 모범된 가장의 모습에 내 스스로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내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도덕적인 굴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들락거리곤 하는 내 마음을

다 붙들어 매놓을 수는 없었던 삶이었음에도
용케도 부셔지지 않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마 남아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면
한갖 내 자신에 대한 유치한 변명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흔히들 '인생에 교과서는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엔 인생의 교과서 대신 지침서라는 수많은 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회적인 규범과 여러가지의 신앙 안에서

보호를 받거나 의지하며 살아가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제 각각 제 나름대로 정립해 놓은 틀 안에서 살아갑니다.

나 역시 내 마음속에 스스로 만들어 놓은 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틀이 아주 단단하지도 내 의지가 강하지도 않았던 탓에
변화없는 일상이 지루해서 내 스스로가 흔들거리거나
누군가에 의해서 원치않던 흔들거림도 있었고,
바람에흔들거리는 갈대처럼틀의 안과 밖을 넘나들곤 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곤 하는 일을 수없이 되풀이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 흔들림 안에는
다시 되돌아가고픈 애틋한 그리움과 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으며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하거나

까마득히 지워버리고 싶은 후회와 부끄러운 일들도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일에 대한 집착으로 가슴앓이를 하거나
털어낼려는 몸부림같은 건

상처만 도지게 할 뿐 결코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이런 일에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며 사는지는 모를 일이나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흔들거리며 살 수밖에 없는 게 내 삶이라 여기니
차라리 마음 편할 일입니다.

가면을 쓴 채 성인(聖人)의 삶을 쫓지 않았던 게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7, 12, 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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