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그러니까 작년 11월 하순 쯤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가고
그 다음날 새벽부터 억세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한라산 산행을 한 다음
하산을 하여 기념품을 파는 곳에 들렀을 때
5천원을 주고 귤나무 한 그루를 사와 화분에 심었던 일이
한달만 더 있으면 벌써 일년이 된다.
그로부터 한달 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 귤나무를 뽑아서 새집 베란다 한켠에 심어놓았더니
봄이 되자 조그만 나무에서 꽃이 피고 진 자리에 송알송알 열매를 맺었다.

내 지금껏 갯수로만 따지자면 제일 많이 먹은 과일 중에 하나가 귤이긴 해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과정을 가까이에선 처음 접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귤나무의 생리에 관해선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나로선 벌과 나비들이 하는 것 처럼
꽃 한송이를 따서 그 꽃술을 다른 꽃마다 일일이 묻혀 주는 수밖에 없었다.
수정을 해준 탓인지는 모를 일이나
며칠 후 꽃이 진 자리마다 성냥 꼬투리만한 진녹색의 열매가 맺어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초여름을 지나올 무렵 쯤콩알, 동부알만큼 자라게 되자
조그마한 나무에 맺혀있는 걸 모두 그대로 뒀다간
나무가 베겨나지 못할 것 같아서 모두 따 버리고 두개만 놔뒀었다.
그러나여름의 한 가운데쯤에 이르러
맺힌 열매가 메추리알만큼 성큼 컸음에도 불구하고
영양분이 열매로만 소모되기 때문인지
나무에선 새로운 싹을 올려 볼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할 일이었다.
베란다에 나가 이런 귤나무를지켜볼 때마다
달려놓은 열매를 모두제거해줘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놔두고 보는 게 좋을 것인지 고민스럽기 그지없었으나
내 안에선이미 열매가 익어가는 과정까지 지켜보자는 쪽으로기울어져 있었다.
이제 어느덧 가을이 오고
짙푸르던 가로수의 나뭇잎들도 서서히 가을빛에 물들어가기 시작하는 요즈음
작은 나무에 맺혀있던 열매에도 노란 빛을 머금기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 욕심때문에 나무에게 못할 짓을 한 것 같아서 미안함과 측은함이 함께 베어있다.
깨어있는 동안만큼은 쉼없이 키를 늘리고 몸집을 불려야만 했던 나무에겐
무지한 주인을 만나전혀 낯선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꽃피고 열매를 맺어 살찌우게 하는 지나간시간들이
견뎌내기 힘든시련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얼마 후면 그동안 무겁게 짊어졌던 열매를 떨궈낸 다음
편안하게동면에 들었다가 새봄이 올 때 다시 깨어나게 되면
예전엔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새로운 삶을 살아갈 과목(果木)의 삶이
내게 있어선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뼈를 도려낸 자리에 다른 뼈를 떼어다 붙여놓고
제발 아무 탈없이 잘 아물기만을 마음졸여 바램하는 동안
매달 한번씩 찍어보는 X-ray사진에 나타나는 불길한 현상을 두고
조금도 망설임없이뱉어내는 두렵고 차가운 의사의 말들을
심난스러움을 숨긴 채담담한 척 들어 삼켜야만 하는 일은
겨울이 오가고 또 새로운 봄이 올 때까지도 계속될 것만 같은 내게 있어선............

세상살이를 해 오는 동안 마음이 심난스러울 때마다
세월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시간이란 되돌리거나 재촉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연륜을 채곡채곡 쌓은 일보다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목(果木)이 그러는 것 처럼 때가 되면 그동안 힘에 겨웠던열매를 뚝 떨궈내며
무거움을털어 버릴 수 있다면 모를 일이나,
내게 짐 지워진 업보(業報)는 떼어낼 수도털어버릴 수도 없는,
내 의식이 깨어있는 날까지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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