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가까워 올 수록
이른 새벽마다
내 새끼 살려달라며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비셨던 내 어머님과
장독대 위에 떠놓으셨던 맑은 정화수 한 그릇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지나간 한달 하고도 보름 동안이
내게 있어선 참으로 암담하고 심난했던 나날들이었음에도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왔던 뜻은
행여 내 어지러운 심사로 인해서 무거움만 얹혀드릴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나 날짜가 정해지고 그 시간이 가까워 올 수록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듯두리번거려지는 걸 보면
나 역시 모질지 못하고 연약한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지난 5월 11일,
이를 쑤신 자리의 통증이 신경쓰여찾아 간 병원에서
별 생각도 없이 찍었던 파노라마 사진을 보며
턱뼈를 잠식하고 있는 큼지막한 종양을 확인하는 순간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어떤 느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종양이 뼈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동안에
통증도 불편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살았으니
이 처럼 황당하고 답답할 일도 없습니다.
세상살이에 안 아프고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건강에 관해서 만큼은 나는 참으로 기구한 사람입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사선을 수도없이 넘나들던 아이를
어머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겨우 살려놨었노라는 갓난아이때 이야기는
내가 의식하지 못했을 때였기에 그만 두더라도,
아홉살 때 앓았던 병으로 몇 년동안 고생을 하고
그 후유증으로 매사에 자신을 잃고 살았던 젊은시절이 너무나 억울한 일인데
또 다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으니
심난스러움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내 어릴적 겪었던 시련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죽을 때까지는 더 이상의 고난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만하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건강에 관해서만큼은 겸손하게 살아왔는데도,
뼈를 잘라내고 떼어내어 옮겨붙이는 수술을 받고
힘겨운 재활과정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생각하니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속으로 다시 발을 들여놓은 것만 같습니다.
운이 좋아서
종양이 있는 부위의 뼈를 긁어내고 골반뼈를 떼어다 메꾸는
네 다섯시간의 수술이길 바래지만,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엔
턱뼈를 잘라내고 골반뼈로 대신하는 열 서너시간의 수술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담당의사의 설명이 자꾸만 귓가에 아른거립니다.
수술뒤의 내 모습이 어떻게 변해있을지는
지금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세상엔 나 보다 훨씬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또한, 건강하게 태어났다 할지라도 나보다 먼저 죽어간 사람도 많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해서 나 보다 더 큰 수술을 받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그 사람들에 비한다면
나는 참으로 운이 좋고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있음을 감사해야 할 일이며
뼈를 갉아먹고 있던 종양이 악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행이라 여길 수도 있는 일입니다.
지난 한달 반동안
나를 스스로 다독거리며, 위로하며, 삭히며,
운명이라 여기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생각들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내일로 예정된수술을 받기 위해서 입원을 하는 날입니다.
이럴 때 내 어머님이 계셨더라면 장독대에 정화수 한그릇 떠놓으시고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깨어나 상심해 있는 내 아내와 아이들과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주실 것만 같아
내 어머님과 장독대위의 정한수를 가슴속에 안고 병원으로 갑니다.
웃는 얼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빕니다.
2007년 6월 25일, 월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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