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퇴원하는 날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11:36

열 이틀동안 갖혀 있다가
내 집을 향하여 병원밖으로 첫발을 딛는 순간의 느낌이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썻던 사형수가
진실이 밝혀져 풀려나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도 이럴 것 같다고 한다면
조금은과장된 표현이 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난 2개월여의 시간들 동안은
내가 원치않았던 일에 얽혀 감옥에 갖혀있던 시간들이었으며
병원에 있는 날들은 마치
억울한 죄수가 모함과 싸우는 처절한 몸부림과 같았기에
그렇게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앞으로도 치유과정이 더 남아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두운 동굴속에서 지쳐헤메다
출구를 통해서 밖으로 막 빠져나온 것과 같아서
어느 때보다 기쁨에 가득 차 있습니다.

수술을 하는 날에 천리길을 달려 온 내 형제들이
수술실로 실려가는 나를 배웅하며
끝내 울먹이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순간
병원에 오기 전까지 내가 평정을 잃지않았던 그 힘의 근원이 어디에서 부터였는지
그리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을 수 있었습니다.

여덟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나
병실에서 내가 의식을 다시 찾는 그 순간
눈물자욱 선명한 화장기없는 초최한 얼굴이었지만
내 아내도 참 이쁘다는 생각을 하며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입영을 이틀앞둔 아들녀석이 자정이 넘겨서 끝난 수술 첫날밤을 뜬눈으로 지새며
내 입속에서 쉼없이 흘러나오는 핏물을 닦아내는 모습에
자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부모와 자식이란
어떤 관계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더없이 든든해 했습니다.

진통제의 효과가 무뎌질때 쯤 통증은 이에 반하여 커져만 갔으나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찾아와 함께 해주니
비록 고통스러운 통증일지래도 치유의 당연한 과정이라 여기며
당당히 견뎌낼 수 있게 해 준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했습니다.

수술을 하기 전날 부터시작된 여드레동안의 금식이
비록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한 것이긴 해도
금식을 끝내고 처음 입에 떠넣었던 싱겁디 싱거운 흰죽이 그렇게 맛있는 줄,
그리고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행복한 일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내가 아파있을 때 내게 힘이 되어주는 이야말로
이 세상에 그 보다 더 귀한 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나처럼 속좁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다보면
때론 너그럽지 못해서 스스로 답답해 할 때가 많았으나
이번 시련을 통해서 많은 걸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병원에 갖혀있던 열이틀동안 걱정하며 찾아와 함께 머물러 준
형제들, 친구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은혜를 입어
내 발로 병원문을 걸어서 나올 수 있었으니,
다시는 아파누워서 병문안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만이
이 많은 분들한테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건강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할 일입니다.

집에 돌아오니
입대한 아들녀석이 훈련을 잘 받고 있다는 부대장의 편지가
우릴 기다리고 있어서 아들을 만난 듯 기쁘나
배웅조차 받지 못하고 홀로 입대를 하며
쓸쓸함을 곱씹어야만 했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고 참으로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애비가 잘 이겨냈듯이
녀석도 무더위와 장마의 시련쯤은 잘 견뎌내리라 믿습니다.

비록 장마철의 후텁지근한 바람이라지만
병원의 창문과 내 집의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바람의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가 없습니다.
답답해 있던 숨통이 탁 트이는 것 같습니다.

다시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2007년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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