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아들을 생각하면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11:41

듣기좋은 소리로"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육군"이라지만
아들녀석은 육군의 보충역, 즉 공익요원으로
4주간의 훈련을 받기 위해서 입대를 했습니다.

군대로 떠난지 2주가 다 되어가는 오늘,
녀석이 소속해 있는 중대장 명으로 보낸 2번째의 편지봉투엔
보낸이와 받는이의 주소가 아들녀석의 글씨체로 적혀 있어서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무엇이든간에
녀석이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라서 반갑고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비록 보충역이지만 군대는 군대이기에
왠만하면 가족 한사람 쯤 입영소까지는 배웅해줘야 할 일이건만
하필이면 내가 수술을 받고 난 이틀후라서 아무도 배웅을 해주지 못한 게
녀석에게 미안하고 마음이 많이 아팟습니다.

녀석이 떠난지 1주일만에 온 중대장 명의의 첫번째 편지엔
인터넷카페를 통해서 아들의 모습은 물론 소식도 주고받을 수가 있다고 해서
몸의 불편을 감수하고 알려준 카페를 접속하여

그곳 게시판에다 녀석에게 편지를 써 놓았더랬습니다.



(2중대 1소대 19번 훈련병

---> 부대 카페에 올려진 단체사진에서 crop)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곳에 가족들이 편지를 써 놓으면

카페관리자를 통해서 훈련병에게 편지가 전달이 되고

일요일 특정된 시간을 이용하여 훈련병들이 회신을 할 수 있나봅니다.

그날은19명의 훈련병의 부모나 형제와 친구들이편지를 써놓았던모양인데

18명의 훈련병으로 부터는 길거나 짧은 답글로써 무사히 잘 있다는 회신이 있었으나
유일하게 단 한명, 그 중에서 내 아들녀석의 답글만없습니다.

하도 답답하여 편지에 적혀있는 녀석의 부대로 전화를 걸어
무슨 이유로 내 아들만 회신이 없는지 물어봤더니
회신하려는 훈련병들의 인터넷접속 차례를 기다리다 못해
내 아들녀석은 그 시간에 개인장비 정리를 하고

다음주 일요일에나 회신을 할 수 있을거라고 합니다.

다른 훈련병들은소식을 궁굼해 하는 부모형제에게

어떻게든단 몇마디라도 잘 있다는소식을 전해서 안심을 시키건만

그런 생각조차없는 녀석에 대한서운함은 그만 두더래도

행여 녀석에게 무슨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내 아들이지만 나는 아들녀석을 생각하면
녀석이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먼저 내 가슴이 답답해지곤 합니다.

하도엉망인 글씨체라서

평소에도 "글씨는 그 사람의 얼굴과도 같으니 쓰기연습을 열심히 하라"며 독려를 했건만

컴퓨터 자판만 잘 두둘기면 되었지 글씨는 무슨 소용이 있냐는 듯

아버지의 잔소리일 뿐이고 쇠귀에 경읽기일 따름이었습니다.

군대에서보낸 편지봉투에녀석이 직접 쓴 집주소를
우편배달부가 도데체 어떻게 해독을 해낸 것인지
편지가 우리집을 찾아 왔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이롭기만합니다.

체중미달과 지독한 근시임에도
돼지고기 위주의 편식과 소식, 매사에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 등은
군대생활을 통해조금이나마 개선시킬기회가 될 것 같아
군대만큼은 꼭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복이 많은 녀석은 신체검사에서 "4급 현역"으로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검 이후 얼마 있지도 않아 병역법이 "4급은 모두 보충역"으로 바뀌는 바람에
보충역, 즉 공익요원으로 군대생활을 대신하게 되었으니
녀석으로 볼 땐 그야말로 행운이지만
아비의 입장에선 유일무이한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 셈입니다.

그래도 녀석이 4주간의 훈련을 받기위해 떠나던 전날 밤,
수술이 끝난 아버지의 입에 고이는 핏물을
잠 한숨 자지않고 빼내주는 모습을 보며
내게도 이런 아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 든든해 했습니다.

이제 2주만 더 있으면
훈련을 마치고 내 앞에 나타날 녀석이
얼마만큼 변해있을지 미리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한석봉의 어머니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지필묵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가 녀석이 오자마자
"불을 끄고서 나는 컴퓨터 자판을 두들길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하고
지필묵이라도내밀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007, 7, 14일, 토요일.

'글 - 허공에 쓴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5, 그날이 오면  (2) 2007.08.26
174, 며느리밥풀과 시어머니  (2) 2007.08.07
172, 착각은 상처입니다.  (2) 2007.07.29
171, 퇴원하는 날  (1) 2007.07.29
170, 입원하는 날  (3) 2007.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