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말에 '며느리'가 붙어있는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 등 세가지 중에 유일하게 줄기에 가시가 없는 것이 바로 며느리밥풀이고 보면 이 꽃의 유래가 되었던 이야기속의 주인공은 정말 착한 며느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며느리밑씻개 )( 며느리배꼽 ) 이 꽃의 생김새를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마치 '겨우 밥풀떼기 두알을 입에 넣었을 뿐인데 주걱으로 뺨을 얻어맞기엔 너무 억울하다'는 듯 아낙이 입을 벌려 안을 보이는 모습과 같아서 우습기도 하고 또 매를 맞은 며느리를 생각하면 애처로운 마음도 듭니다. 누구에겐가 며느리밥풀꽃에 얽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에 가난한 홀어머니가 금지옥엽 외아들을 키우며 살았는데 홀어머니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아들은 장가를 든 이후 아내한테 빠져서 헤어나올 줄을 모른 채 겨울을 보내다가 봄이되자 멀리 머슴살이를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며느리가 밥을 하다 뜸이 들었나 보려고 밥솥 뚜겅을 열어 밥알 몇개를 입에 넣자 이 광경을 목격한 시어머니가 어른을 놔두고 먼저 밥을 먹었다 하여 몽둥이로 며느리를 후려치니몇 날을 시름시름 앓던 며느리가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들이 돌아와 통곡하며 양지쪽에 아내를 묻으니 이 무덤가에는 며느리의 뺨과 입술처럼 붉은 꽃의 혀에 밥알 두 개가 얹혀 있는 듯한 꽃이 피었고, 억울하게 죽은 며느리가 '나는 결백해요'하며 피어난 꽃이라 하여 사람들은 그 꽃에 '며느리밥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며느리밥풀)시어머니와 며느리에 얽힌 이야기는 며느리밥풀 이야기 말고도 얼마든지 있으며,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이면 돌아와 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되돌아가는 철새인 소쩍새에 얽힌 이야기도 그렇듯이 옛 사람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특히 시집살이 이야기에서 며느리들은 한결같이 약하고 가엾은데 반해 늘 악역을 도맡아야만 했던 시어머니는 참으로 억울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늘 승자나 최후에 살아남은 자의 몫이듯 시집살이란 대부분 시어머니와 함께 시작해서 더 늦게까지 살아남아있는 며느리에 의해서 완성되기 때문에 악역을 도맡아야 했던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집살이에 관해선 내 어머님께서도 예외가 아니셨던 모양이나 아들을 셋씩이나 두고서도 며느리들에게 시집살이는 커녕 따뜻한 밥 한끼 제대로 못 얻어드시고 세상을 떠나셨기에 아들을 키우느라 애를 쓰신 어머니로선 참으로 아쉬울 일이나 반면에 우리집 며느리들이 시집살이에 관해 되새김질 할만한 이야깃거리는 만들어놓지 않은 셈입니다. 그 덕분에 내가 아내와 함께 살아온 25년여 동안 시어머니로 부터의 시집살이에 관한 푸념은 단 한번도 들은 적이 없으며, 친정어머니보다 더 포근한 시어머님이셨다는 아내의 표현이 아니더래도 내 어머님께선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킬 분은 결코 아니셨습니다. 어머님께서 아주 가끔씩 우리 집에 오실 때도 아버님 식사를 챙겨드려야 하기에 한시라도 빨리 가야한다며 하룻밤도 마음편히 머물러 계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며느리가 차린 밥 몇 끼니 드시며 마음편히 며칠 머물러 계시는 건 대수롭잖을 일이나 혹여 자식이나 며느리가 불편해 할까봐 아버님의 끼니 걱정을 핑계 삼아 동이 트기를 기다려 내려갈 준비를 서두르던 어머님이셨습니다. 내 어머님은 말년까지 끝내 그렇게 사셨기에 며느리의 시집살이에 관한 이야기에서 만큼은 저 세상에 계시면서도 누구보다 자유로우시리라 믿지만 어머님 생전에 잠시라도 편히 모시지 못했던 불효는 평생을 내 가슴속에 회한과 아픈 그리움으로 대신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풀숲에 피어있는 며느리밥풀을 바라보는 순간 이야기 속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간 며느리에 대한 안쓰러움 보다는 가엾은 내 어머님 생각에 무심코 바라본 하늘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시리도록 파란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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