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5월 04일 목요일 ) 며칠 전엔 올 들어서 처음으로 밭에 나가봤더니 이른 봄에 돋아난 잡초들이 서로 키재기를 하듯 수북한데 비해 농사준비를 말끔하게 해 놓은 이웃밭을 보니 마음이 다급해집니다. 여가를 활용해서 흙을 밟고 흙냄새나 맡고 살자며 친구녀석과 함께 마련했던 밭인데 몸이 좋지 못해 올해 부터는 거들 수가 없겠다고 하니 혼자서는 일하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심난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넓지않는 땅이지만 게으른 주인을 만난 탓에 모양새가 말이 아닙니다. 기왕 밭에 나간 김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비닐도 주어모으고 무성하게 자라서 보기싫은 잡초를 뽑다 보니 땀이 후줄근히 흐릅니다. 간혹 잡초들 사이사이에 벌씀바귀, 뽀리뱅이, 봄맞이, 제비꽃, 냉이, 주름잎 등의 봄꽃들이 저마다 예쁘게 꽃을 피워놓은 채 나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어 하던 일은 뒷전으로 미뤄놓고 카메라를 이리저리 들이대는 그 시간 만큼은 허튼 짓이 아니라 나 혼자만의 여유로움 입니다.
( 광대나물 ) (벌씀바귀)
( 냉이 ) (뽀리뱅이 - 박조가리나물) 따지고 보면 지금 피어난 꽃들 모두가 밭에 있어서는 안 될 잡초에 지나지 않지만 들꽃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바라볼 땐 깊은 산중이나 들에서 만났던 어느 들꽃 만큼이나 반갑고 예쁘기 그지없습니다. 마음 같아선 빈 밭에 작물이 아닌 들꽃의 씨를 뿌려놓은다면 폭우가 쏟아지건 말건 태풍이 불건 말건 아무런 걱정도 없이 지내면서 때가 되면 꽃들이 피고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사는 것도 좋으련만 이웃에 있는 밭의 주인들로 부터 '풀씨를 퍼뜨린다'며 내게 쏘아대는 따가운 눈총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뽑아서 불에 태워 없애버려도 어디선가 씨가 날아와 악착같이 뿌리를 내리고 때가 되면 꽃을 피워 종자를 퍼뜨리는 녀석들을 심고 보살피는 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선 할 일은 아닙니다. 새해들어 다른 해보다 마음이 더 바빠진 이유는 게으름만 피우지 않는다면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녀석들은 가을까지는 사진으로 담아놓은 다음, 내년부터는 야생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녀석들을 만나러 다닌다는 썩 괜찮은 핑곗거리를 만들어 놓고 내 주변이 아닌 조금은 먼 곳까지 나돌아 다녀보고 싶은 속마음입니다.
( 봄맞이 ) ( 주름잎 )
( 제비꽃 ) ( 큰개불알꽃-봄까치 ) 그래서 그런지 풀숲속에 숨어 핀 꽃도 때를 놓치고 지나쳐 버리면 또 한 해를 기다려야만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산이나 들을 지날 때도 눈길이 닿는 곳을 살피느라 헛눈을 팔 틈이 없습니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곧잘 "누가 시켜서 산 꼭데기에 갔다 오라면 절대로 안간다"라고 말들을 하듯이 만약 이 짓도 누가시킨 일이라면 이미그만뒀을런지도 모를 일이나, 하나를 가져다 놓으면 몇개를 더 채워넣고 싶고 무료할 땐 모아놓은 사진들을 뒤적거리는 재미도 쏠쏠하다보니 남들이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취미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해 놓고서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내 하는 짓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남에게 불편주지 않고 내가 괜찮은 한, 그리고 가정에 무관심하다며 아내가 타박하지 않는 한 이 짓을 계속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분재를 한다며 죄없는 나무에게 못할 짓을 할 때도 있었고 잠시동안은 춘란에 미쳐서 온 산을 헤맬 때도 있었으며 지금은 이 짓에 재미를 붙여 빠져 있으나 내일은 또 무슨 짓을 하며정신을 빼앗길려는지는 나도 모를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