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장모와 사위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11:15

(2006년 6월 16일 금요일)

작년엔 장모님 칠순을 변산반도의 궁항에 있는 한 팬션에서 쇠어드렸는데
올 생신을 며칠 앞두고 장모님께서 우리집으로 오셨습니다.
사위가 썩 잘 해드리지도 못하고 사는데도 내 집으로 오신 게 고마워서
처가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조촐하게나마 생신을 쇠어드렸습니다.

장모님께선 종가의 큰며느리로 시집을 가셔서
내 아내와 다섯살 터울의 처남을 낳은 뒤 혼자되어
거친 세상을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오신 탓인지
살갑고 인자하신 면에선
내 어머님께서 사위들을 대하시던 모습과 비교가 되곤 했습니다.

자주건 가끔씩이건 사위가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엔
항상 마당까지 나가셔서 반겨 맞으시던 내 어머님,
매형께서 집에 오시는 날엔
마당에서 배회하던 씨암탉들 중에 가장 실한 녀석을 골라
나를 시켜서 모가지를 비틀게 하시고
마늘, 대추, 인삼을 듬뿍넣어 장작불에 삶아서
닭다리를 직접 떼어 사위에게 건네 주시던 내 어머님의 모습만을 봐왔던 지라
사위와 장모님 사이는 늘 그런 줄로만 알았었습니다.

집에 어려운 손님이 오실 때에도
푸줏간에서 돼지고기나 사다 국을 끓여 대접하시던 분이
집안에서 제일 어른인 아버지도 안 잡아 드리는 씨암탉을
사위들이 올 때면 어김없이 모가지를 비틀게 하셨으니
'사위는 백년손님' 또는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는 속담을
그대로 실천하신 셈이셨습니다.

내가 사위되고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
퇴근버스 안에서 불현듯 장모님이라도 뵙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들 때마다
직장에서 집에오는 중간쯤에 있는 처가에 들려서 인사를 드리곤 했으나
장모님께선 "어서 오게"라는 말 대신 "어쩐 일인가?"라 하시며 나를 맞이하실 때마다
기대했던 것 보다는 왠지 차가운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거칠고 험한 세상에 홀로서 어린 두 아이들을 키우시느라
온갖 시련을 견디거나 극복하시는 동안
어머니 보다는 가장으로 모진 세월을 살아오셨을 장모님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미리 각인되어 있던 사위와 장모 사이의 통념을 허물어 뜨리고
내 자신의 입장에서 새로 정립하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세대에 있어서 엄연히 잔재해 있는 남아선호 사상이
내 어머니나 장모님 세대에 있어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실제로도 장모님의 처남에 대한 기대가 절대적이라
아내나 사위인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조차 없는 건
조금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러시는 어머니에게 실망을 끼쳐드리지 않으려 애를 쓰는 처남이 있어서
나와 아내의 입장에서 볼 때 고맙고 마음든든할 일이었으나,
오직 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오신 분께서 며느리를 맞아 들이고 나면
처남이 지금보다는 어머니에게 소홀해 지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을텐데
그 때는 얼마만큼 이해를 하고 넘겨 주실까 하는 게 은근히 걱정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처남댁께서 살림도 알뜰하게 하면서도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며
작은 파열음 조차도 느끼지 못할 정도라서 참으로 다행스러울 일이지만,
장모님께서 복이 많으셔서 그런 게 아니라
젊은 내외의 자기 희생과 마음갖임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을 일이라서
내 아내로선 이런 올캐가 더없이 고마운 모양입니다.

장모님께서 우리집에 오실때면
딸의 살림살이가 마음에 들지않아 이런저런 지적을 하게되고
아내로선 다 받아들이지 못해 말대꾸가 시작되면서 어김없이 집안이 소란스러워 집니다.

이처럼 딸도 못 맞추는 어머니의 비위를
젊은 며느리가 맞추고 사는 걸 지켜보는 시누이로선
이런 올캐가 대견하고 고맙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비록 소외감을 느끼며 자란 시절들이 씻은 듯 지워지진 않았겠으나
순탄치 못했던 장모님께서의 인생여로에 있어 지극히 당연할 일로 여긴다면
내 아내로써도 이해 못할 일은 결코 아니며,
사위된 입장으로써도 내 어머님의 "어서 오게"라는 말 보다
장모님의 "어쩐 일인가?"라는 말이

훨씬 더 반가운 뜻이라고 여기면 될 일입니다.

"시골집 마당에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먹고 자란 촌닭이라면 또 모를까
양계장에서 사료를 먹고 자란 닭은 몸에 좋지않고 맛도 없다"하시며
한사코 비싼 쇠고기를 사다가 국을 끓이시는 장모님이시고 보면
'사위자식 개자식'이라는 속담만 담고 계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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