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4월 29일 토요일 )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곁을 떠났던 아들녀석이 두달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저녁식탁엔 어김없이 잘 삶은 돼지고기와 막 담은 배추김치가 놓여있습니다. 유난히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아들녀석이라서 아내는 아들을 위해 정성들여 김치를 새로 담그고 고기를 삶아서 차려놓았겠지만 입이 짧은 아들녀석은 어떤 맛있는 음식이 있더래도 배불리 먹는 법이 없어서 음식을 장만한 엄마로선 예나 지금이나 적잖게 언짢을 일입니다. 키만 훤칠하게 클 뿐 편식과 소식을 일삼아 앙상하게 야윈 녀석을 볼 때마다 걱정이 태산같아서, 녀석이 중학교에 갓 입학을 했을 무렵 어느날 편식하는 식습관을 고쳐볼 심사로 아내를 시켜 돼지고기만 제외시키고 갖가지 나물과 생선반찬을차려놓고 아들녀석을 식탁에 앉혀놓았습니다. 미리 짐작했던 대로 밥 몇 숫가락 떠 먹는 시늉을 하다 말고 식탁에서 일어서려는 녀석을 다시 않게 하고선 밥그릇을 다 비운 다음이 아니라면 일어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비록 작은 공기이긴 해도 먹기싫은 밥을 한그릇이나 비우는 일은 식성이 좋은 내게 있어서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녀석의 식습관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깨우쳐 주고 싶었습니다. 마지못해 몇 숫가락 더 떠먹는 시늉을 하던 녀석이 끝내 울먹이기 시작하자 나 역시도 화가 치밀어서 "앞으론 엄마한테 세가지 이상의 반찬은 식탁위에 못 올리게 할테니 네가 먹고 싶은 것 세가지만 적어라"라며 녀석에게 메모지와 볼펜을 건넸습니다. 녀석이 망설이지 않고 써 놓은 메모장을 보는 순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무진 애를 썻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돼지고기, 된장, 김치" 녀석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도 돼지고기만 좋아하길레 직장 동료 몇 사람들과 어울려서 통돼지를 잡아 나눠다가 살코기만 손질하여 냉동실에 넣어놓곤 했던 이유는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게되면 언젠간 싫증이 날 때가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고 그날 이후 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겨 다른 반찬에 젓가락질을 하는모습은 보이긴 해도 지금까지도 편식과 소식은 눈에 띌만큼 변화가 없어서 걱정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부모곁을 떠나 살면서 두달이 넘도록 엄마 아빠 보고싶어서 집에 오고싶다는 말 한마디 안 하는 녀석이 기특하고 대견스럽다고 해야 할 일인지, 아니면 서운하다고 해야 할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젠 제 몸을 스스로 챙길 줄 알 나이가 된 녀석이지만 저도 이제 컷다며 식습관을 걱정하는 아비의 말을 간섭이나 잔소리로 듣지나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