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3월 09일 수요일 ) 우물안의 올챙이시절에 고향의 흙만 밟고 살다가 세상밖으로 나와서 제일먼저 생경스럽게 느낀 것이 바로 타향에서 봤던 흙입니다.
고구마와 양파와 마늘이 잘 되는 자갈한톨 섞이지 않은 빨간 황토밭만 보며 자란 탓에 밭에서 주어낸 돌이 가장자리에 수북히 쌓여있거나 자갈들이 적잖게 섞여있는 밭들을 보며 내 고향의 질좋은 흙과 향수를 짙게 느꼈던 일이 새삼스럽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양파와 마늘과 고구마를 보거나 먹을 땐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고향의 흙입니다.
고향의 빨간 황톳땅에서 많이 짓던 고구마는 구어도 삶아도 날것으로 먹어도 맛이있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이만한 것도 없었으며, 내게 있어서만큼은 먹을거리가 풍성해 진 이후로도 물리지 않고 즐겨먹는 유일한 먹거리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시장에 갔던 아내가 고구마를 사왔습니다. 남편이 즐겨먹는 것임에도아주 가끔씩 사오면서 생색을 톡톡히 내곤 하는 것이 바로 고구마인데 , 내 나름대로 계획했던 것이 있어서 먹지않고 아껴뒀다가 바로 어제 그 고구마를 넓지막한 화분에 심어서 베란다 양지바른 곳에 놓아두었습니다. 요즈음엔 모든 먹거리들이 대형냉장 창고에 보관된 것들이라서 보관과정에서 얼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걱정스럽긴 해도 그렇지 않았다면 분에서 싹을 틔울 게 확실합니다. 싹이 돋아서 자라는대로 잘라서 밭에 심어 볼 심사인데 의도했던대로 되면 다행스러울 일이나 그렇지 않고 썩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아내의 잔소리는 불보듯 뻔한 일이려니와 먹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까지도 미리 생각해 놓았습니다. 내 하는 짓이 늘 이렇습니다. 겨울과 봄이 함께있는 탓에 찬바람 불며 눈이 흩날리는 풍경을 바라 볼 때 느긋했던 마음도 포근한 바람결엔 다시 무엇엔가 쫓긴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하는 요즈음입니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겨울과 봄을 쉼없이 넘나들고 있는 내 자신에게 "사람 마음의 변덕이 죽끓듯 한다"라고 하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아 멋적어하면서도 봄이 오기전에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잘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산다면 세상사 우여곡절 없이 평탄하고 무난한 삶을 살 수는 있겠으나 그렇게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기엔 한번 뿐인 인생이 너무 삭막할 일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형체가 없는 것이라 언제 어떻게 바뀔런지는 모를 일이나 강물 흐르듯 유유자적하는 삶이라면 비록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지라도 경직되고 틀에 박힌 삶보다는 차라리 더 나을 일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그렇게 살기란 쉽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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