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5년 3월 17일 목요일 )춘란을 키우기 시작한 지 15년은 되었는데도 아직 이 놈들의 생리를 다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주 세력이 약한 놈들은 새봄을 맞아 힘겹게 새촉을 올려놓는 순간에 어미촉이 죽어없어지곤 하는 짓을 되풀이해서 속을 상하게 하고, 어떤 놈들은 일년에 두촉씩이나 올려놓고 이른 봄이면 꽃도 잘 피워줘서 기쁨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춘란은 무지 강한 척 하면서도 환경의 변화에 민감해서 주인의 무관심이 계속되거나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어떤 형태로든 투정을 부려대곤 하니 부지런하지 못한 내가 사서 이 고생을 시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해마다 분갈이를 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은 기초, 또는 뿌리가 튼튼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크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한번 병이 걸리면 왠만해서는 치료가 되지않는 것이 춘란이고 보면 시커멓게 썩어있는 뿌리를 볼 때마다 안타까움이 적지가 않습니다. 이 놈들은 다른 사람들이 키우는 과정에서 병을 얻은 것들로써 죽기 바로 직전에 내게 맏겨진 것들이 대부분인데, 그동안 정성들여 치료를 하며 관심을 더 쏟았는데도 재생은 커녕 곁에 있는 다른 놈들한테까지 병을 옮기는 짓을 서슴없이 하곤 해서 내눈에 미운 가시가 많이 박힌 놈들이지만 가엾은 탓에 가장자리로 밀쳐놓는 일 말고는 그 이상의 푸대접을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 며칠전 뉴스에서 싯가 2억원이나 된다는 춘란을 봤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차잖은 풀포기에 지나지 않는데 몇 만원이 아닌 몇 십만원이 아닌 몇 억이라는 말에 춘란을 키우는 제 자신도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그 란을 보면서 "참 좋다" 또는 "한 촉만 키워봤으면... "하는 욕심도 생겨납니다. 사실 내가 갖고 있는 놈들은 기껏해야 흔히 볼 수 있는 복륜, 호 몇촉, 소심 등 값어치로 따지기에도 어줍잖은 것들이라서 그런 욕심은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좋은 란 하나 갖고싶어 하는 것은 춘란을 키우는 사람들의 크나큰 바램이기도 합니다. 어제 저녁무렵부터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습니다. 나뭇가지의 겨울눈들은 몸집을 한층 더 부풀려 놓았다가 따뜻한 햇살에 기지개를 켜며 새눈을 뜨게 할 비라서 좋겠지만 나 역시 비로소 봄을 맞이할 준비를 다 끝내고 나니 이 비가 그리 싫지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심어뒀던 고구마는 언제쯤에나 싹을 올려 줄 것인지 마음이 조급해 집니다. 그들도 나처럼 조금 더 겨울이 머물러주기를 바래며 늦장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춘란은 가끔은 속을 상하게 하거나 투정도 부리곤 하길레나는 춘란을 이야기 할 때마다 "놈"이란 비속어를 붙여서 앙갚음을 하곤 합니다.그러나 그 만큼 정도 깊게 들있다고 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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