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4월 01일 금요일 )
워낙 땀을 많이 흐르는 체질이라서
겨울에도 겉옷은 베낭에 넣어두고 정상에서 쉴 때만 입곤 했으나
오늘은 파카도 조끼도 집에 두고
새로 산 여름용 등산바지와 가벼운 셔츠 하나만 입으니
겨울산행 때보다 몸이 훨씬 개운하고 가볍습니다.
아직 조석으론 기온의 일교차가 클 때라
산 입구에선 제법 오싹함을 느꼈으나
산에 오른지 얼마 되지않아서
후줄근히 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머리띠를 미리 두르지만
때에 따라선 머리띠도 아랑곳하지않고 얼굴로 흘러내리곤 해서
산행을 할 땐 불편하더래도 미리 안경을 벗어야만 합니다.
혼자서 등산을 할 때면
내 뜻대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적적하거나 발걸음이 빨라지곤 하는 것이 늘 문제라서
시계는 일부러 집에 두고 다니곤 했으나
오늘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왔습니다.
산행을 하면서 시계를 보는 일은
대체적으로 두가지 때문입니다.
정상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릴 것인가와
하산을 했을 때 오늘은 얼마만에 다녀왔는가 하는 것인데
이런 일로 시계를 보는 건 참으로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입니다.
아니나 다를까내 못된 습성이어김없이 도지기 시작합니다.
산행을 하면서 시계를 볼 때마다 어김없이 도지곤 하는
"잘 하면 신기록을 세울 수 있겠다"라는 병입니다.
2년 전 늦은 가을무렵
버스종점에서 출발하여 토끼등, 동화사절터, 중봉, 서석대까지
1시간 50분의 시간이 걸렸던 뒤론 아직 한번도 그 기록을 깨지 못했던지라
오늘도 어김없이 발걸음이 빨라지게 되고
차츰 헐떡거리는 숨소리는 산에서 나는 작은 소리까지도 다 흡수해버리고 맙니다.
이쯤 되면 좋은 풍경이나 들꽃을 담으려고 챙겨 온 카메라도
이 상황에선 산행에 방해가 되는 짐일 뿐이라서
이 때 만큼은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이 나타나주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산길은 며칠전에 내린 비 때문에 푸석거리거나 질퍽거리지 않고
햇살이 닿지않은 곳엔 서릿발이 하얀 잇몸을 드러낸 채 날을 세우고 있어
걷는데는 전혀 불편하지가 않습니다.
무등산의 마지막 샘터인 동화사 절터에서 목을 축이고
사향능선에 올라설 때면
북쪽으론 담양의 추월산, 병풍산, 광주댐이 훤히 보이고
동남쪽으론 육중하고 부드러운 몸집의 천왕봉이 마치 날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비록 이 산길은 다른 산길에 비해서 가파르긴 하나
시야가 시원하게 확 트이인 풍경이 아름답고 언제든 시원한 산바람이 부는 곳이기에
무등산을 오를 땐 대부분 이 길을 택해서 오르곤 합니다.
사향능선, 중봉, 그리고 서석대에 이르니
출발지에서 부터 1시간 47분이 걸렸습니다.
올 들어서 열번째 오른 무등산의 서석대,
그리고 3분 단축.....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아무 의미없는 짓이란 걸 알면서도
산행 중에 시계를 볼 때면 어김없이 도지는 병,
집에 돌아와선 내 하는 짓이 우스워서 스스로를 비웃곤 하는 병,
이젠 정말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을 그만 할 생각입니다.
규격돈(90kg)이 넘는 몸집으로
이 짓을 오래하다 보면 무릅관절에도 결코 좋을 일이 없을뿐만 아니라
앞으로 1,2년 산에 다니고 말 일은 아니니까요.
'글 - 허공에 쓴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9, 고사리나물 (0) | 2007.07.29 |
---|---|
138, 호연지기 ( 浩然之氣 ) (0) | 2007.07.29 |
136, 春蘭 (0) | 2007.07.29 |
135, 내 삶의 한 조각 (0) | 2007.07.29 |
134, 산으로 가는 이유 (0) | 2007.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