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가족여행을 꿈꾸며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10:35

( 2004년 11월 29일 월요일 )

아직 버텨내고 있던 노란은행잎이
지난밤 비바람에 다 지고
비에 젖어 사람들의 발에 밟혀 짖이겨지는 모습이 못내 안스럽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않는 곳에 쌓인 낙엽은
하얀눈이 소복히 쌓여있는 풍경만큼이나 아름답다 생각하는 찰라에
모진 바람이 불어 길섭 구석진 곳에 휘몰아쳐 버리니
세상엔 무엇이든 어느 한 곳에 안주하는 걸 허용치 않는 게
자연의 섭리인가 봅니다.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밟히면 부숴지고
바람에 몰려다니다가
썩어서 흙으로 되돌아가는.....

낙엽이 썩어가는 냄새는 악취가 아닌 향기입니다.

오염되지 않은 흙에서나 맡을 수 있는 그런 향기입니다.

버릇처럼 되뇌였듯이
제 할일 다 하고 가는 마지막 뒷 모습이라서
바라보는 마음이 엄숙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린 생명으로 태어나

어느 한 순간을 살다가

어김없이 죽어가곤 하는 그 모습들을 윤회의 수레바퀴라 여기면

이런 변화에 초연해 질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자연은 이처럼 끊임없이 돌고 도는 까닭에
차디찬 가지에서 새잎이 돋아 자라나는 모습에 반기며 기뻐하거나
비바람에 떨어져서 사람들의 발길에 부숴져 썩어가는 모습을 보며
애석해 할 일만은 아닙니다.

이처럼 가을이 떠나가는 때를 맞춰
모초롬 가족여행을 떠날까 하고 아이들한테 말을 건넸으나
두녀석들은 썩 내키지 않은 표정들입니다.

수능이 끝난 아들놈, 졸업작품전까지 끝난 딸녀석,
둘 다 홀가분해서 선뜻 따라나서 줄 것 같았는데.
거절 못하고 마지못해 동참하겠다는 녀석들에게
서운해 할 일인지 고마워 해야 할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혼자서 호젓하게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유난히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하는 내 자신이고 보면
설령 떠난다 해도 쓸쓸함을 견디지 못해 금새 되돌아 올 게 뻔합니다.

인간이란 홀로 머무는 일엔 익숙치 못한 속성이라서
내가 그럴 때마다 못견뎌 하는 것은
그리 이상할 일은 아닙니다.

가끔씩은 홀로여서 좋을 때가 있긴 해도
대부분의 일상 중에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함은 물론
나를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잠 자리까지도 편안해 지는 건
보통 사람들에 있어 같은 느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내 아이들 만큼일 때 그랬듯이
내 아이들 역시 스스럼없는 친구들과 하는 여행이면 더 좋을 일이라서
선뜻 동조해 주지않은 녀석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지만
부모된 마음 한켠엔 서운함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 내가 죽고 녀석들이 나만큼일 때
아버지랑 함께 했던 가을여행을
애틋한 마음으로 회상할 날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계절은 다시 오지만
인생은 가고 말면 그 뿐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