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11월 09일 화요일 )벌초는 추석을 며칠 앞두고서 해마다 하는 일이라 지금쯤은 그 일을 일상적인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할 때도 되었건만날을 받아놓고 부터 마음이 심난해지곤 하는 것은 올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 추석을 며칠 앞두고서 벌초를 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작업을 한참 하다보니 팔에 힘이 빠지고 땀이 샘솟듯 하여 예초기를 내려놓고 앉아서 갈증을 삭히고 있을 때문득, 산소 가장자리에서 수줍은 듯 피어있는 보라빛 꽃이 눈에 들어옵니다.평소 들꽃에 관심이 적지 않았던 터라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잎이 돋아있는 마디마다 보라빛 꽃을 피워놓은 채 서너 개채가 무리지어 서 있어 준비해간 카메라에 담아놓고 자세히 들여다 봤더니옛날에 할아버님께서 일러주셨던 '약쑥'이 틀림없었습니다.어렴풋한 기억에 할아버님께서 약탕기에 넣어 달이곤 했던 이 풀,당시에 할아버님께서 왜 이걸 달여 드셨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나는 그 이후 이 풀의 이름을 '약쑥'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의 일입니다.우연히 날짜가 여러날 지난 월간지를 뒤척이다한켠에 눈에 익은 꽃 사진이 보입니다."이걸 어디서 봤더라?아~! 바로 그 꽃~!"지난 추석에 벌초하러 갔다가 봤던 그 꽃입니다.그 꽃 사진 아래엔 "익모초(益母草)"라 이름이 붙여져 있고그 이름이 붙여진 유래가 다음과 같이 써 있습니다.***옛날 시골 마을에 살던 가난한 어머니가 아들을 낳은 뒤부터 시름시름 아팠지만 가난해서 제대로 치료 한번 못받는 처지였습니다.아들은 의원에게 가보자고 청했지만 어머니께선 한사코 거절하시는 터라하는 수 없이 홀로 약초꾼을 찾아가서 필요한 약초 한 꾸러미를 사와 달여드렸더니 호전되는 것 같았습니다.아들은 다시 약초꾼을 찾아가이 약초가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하였으나 가르쳐 주지 않자약초꾼이 약초를 캐러 나가는 것을 몰래 뒤따라가마을 밖에 있는 제방에서 그 약초를 캐내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고 아들은 그후 그 약초를 캐와 어머니께 약을 달여 드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다시 건강을 되찾게 되었으나그 약초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아들은 "어머니께 유익한 약초"라 해서 익모초(益母草)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익모초(益母草)"란 이름은 흔하게 들어왔던 이름이고들녘을 지나면서 가끔씩 눈에 띄곤 했던 풀이었으나할아버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그 약쑥이 바로 이 익모초인 줄은 몰랐습니다.할아버님께선 이 약쑥은 아주 쓴 약이라고 하셨는데그렇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우리 막내(여동생)가 막내노릇을 톡톡히 하면서엄마 젖을 초등학교 들어가던 해까지 빨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그 녀석이 초등학교를 여덟살 먹던 해에 들어갔으니아무리 막내라지만 어머님께선 꽤나 귀찮으셨을 것은 뻔한 일입니다.바로 그 무렵 막내가 엄마 젖을 빨지 못하도록 이 익모초를 약탕기에 넣고 끓인 물을 어머니 젖꼭지에 바르곤 하셨기에막내녀석이 어머니 젖이 쓰다며 꽤 여러날 짜증을 내곤 했던 모습이어렴풋한 기억속에서 가물거립니다. 오늘아침 익모초의 사진과 그 풀의 유래를 접하고 나서그때 담아왔던 사진에약쑥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익모초로 바꿔서 붙여놓았습니다.익모초는 억새게 번성하거나 잔디를 보기 흉하게 하는 풀이 아니라서그냥 둬도 상관없을 뿐만 아니라항상 부모님 산소에 피어 날 반겨줄 것만 같아서앞으로는 익모초만큼은 베지않고 그대로 놔둘 생각입니다. 내 어머님께서 가신지도 어언 15년,어머니의 병을 낫게 했던 전설속의 풀이자실제론 내 막내녀석의 젖 버릇을 떼게 했던 익모초가 자라고 있는 산소라면혼자서 벌초를 하며 힘겨움에 심난스러워 했던 일들도앞으론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비록 하차잖은 풀포기에 지나지 않지만그 의미만큼은 내 가슴속에 어머님과 함께 애틋함으로 새겨놓으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