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어버이날에 아버님을 그리며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10:15

( 2004, 5,6 )

내가 젖먹이 일 때,
어머니의 품에 안겨 젖을 빨면서도
나머지 한쪽 젖가슴을 만지작거리다가
게슴츠레 실눈을 떠 어머니가 계심을 안도하며 잠이들곤 했습니다.


그 무렵 나에게 있어서는,
혼자서 독차지해야만 했던 오직 나만의 어머니였고
나를 위해서만 존재해야 했던 어머니였습니다.


내 어린시절엔,
어머니가 내곁에 안계시면 못 살 것만 같은 생각은 늘 하고 있으면서도
아버지가 안계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음을
이제와서야 죄스러운 마음으로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의 그런 생각은,
언제나 가까이에 아버지가 계셔서 마음 든든함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의 젖으로 배를 채울 때부터
"원하면 뭐든지 내게 주시는 어머니"가 늘 곁에 계신다는
생각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시며
엷은미소를 짓곤 하시던 아버지를 의식할 때면
그 미소속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세상의 모든 아버지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없이 지켜 보시는 분으로만 여겼습니다.


눈빛으로 꾸짓으시고
침묵으로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어렵게만 느껴져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에게 더 가까이 갈 수밖에 없었음을
이제서야 솔직히 고백을 합니다.


한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두 아이들이 제 손으로 밥을 챙겨먹을 때에 이르러서야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의 사랑에 견줄만큼
큰 마음이 흠뻑 베어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딸아이가 아파 병원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던 날,
새벽녘 하늘 별빛이 하도 서러워 남몰래 눈시울 적시면서
아버지도 때로는,
자식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내 어릴적,
휘몰아치던 삭풍에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호롱불같은 내 생명을 지켜보시며
붉게 충혈된 아버지의 눈시울은
군불을 지필 때 피어나는 매운연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1975년 겨울 어느날, 아버님과 작두로 소 여물을 써는 광경인데

내 아버님과 함게 찍은 몇 장 안되는 사진 중의 하나다.

검정 통고무신, 짧은 예비군복, 아버님은 이때까지만 해도 한복을 입으셨다.)


내 어께에 얹혀져있는 식솔들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청춘의 뜨겁게 끓는 피를 찬물로 식히고
자존심까지도 스스로 꺾어야만 했던 시절을 지나오면서
아버지란,
늘 우뚝 서있어야 하는 존재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비로소 알았습니다.


날마다 살 맞대며 살아 온 아내와
서로에게 작은 불만쯤은 다독거리며 산다고는 해도
가끔씩은 짖누르지 못하고 위로 솟구칠 때마다
오직 아비만를 향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녀석들을 보며
아버지란 참으로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도
비로소 알았습니다.


어머님을 먼저 떠나보내시고 말을 잃어버리신 채 외롭기만 하셨던 10년,
이 세상에서 마지막 밤을 맞이하시던 그 무덥던 여름날 해질녘,
떠 넣어드리는 밥은 드실 생각조차 않으시면서
뚫어져라 쳐다보셨던 아버님의 눈빛은
제게 무엇을 말하시려는 것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습니다.


말을 잃어버리셨던 10년의 세월은,
어머님을 다시 만나 이승에서 못다한 이야기 나누시려고
일부러 말문을 닫아버린 것은 아니었는지요?

아버님 가신지 어느덧 3년,
그리고 모레는 어버이날,
당신의 가슴에 빨간 꽃 한송이 달아드리던
철없던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셨는지요?


저에게 어머님이 포근한 보금자리셨다면
아버지는 내 마음의 든든한 기둥이셨음을 뒤늦게서야 깨닫고
다 하지못한 효를 이제와서야 후회를 하곤 합니다.


내 가슴에 달아 줄 꽃을 미리 사 놓고서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 어릴적 생각에, 그리고 아버님 생각에 코끝이 시큰해집니다.

아버님!!!

이젠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는 평화로운 곳에서
어머님 다시만나 마음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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