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봄날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10:13

( 2004년 4월 14일 수요일 )

봄볕에 그을리면 님도 알아보지 못한다"던가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놓고 가을볕엔 딸을 내놓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봄 햇살에는 다른 계절보다 자외선이 강해서
조금만 햇볕에 내 놔도 금방 얼굴이 까맣게 되는 까닭에
그런 속담도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는 봄이면 얼굴이 까맣게 되는게 탐탁치가 않아
산행을 갈 때면 썬크림을 바르고 나가긴 해도
유난히 많은 땀을 흘리는 체질이라 금새 씻겨져 내려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예전 한때엔 구릿빛 피부가 건강하게 보인다 해서
사람들이 일부러 햇살에 피부를 태운 적도 있었다지만
아무래도 까만 피부의 사람들 보다는 우유빛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더 귀티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잘 보일 일이야 없다해도
기왕이면 천한 것 보단 귀한 것이 더 나은 일이라
봄철만 되면 따가운 햇살이 은근히 신경이 쓰임에도
들로 산으로 땀을 흘리며 쏴다니다 보니
뽀얗게 사는 것을 채념한지도 꽤나 오래된 일입니다.

이렇듯 나를 유난히 시커멓게 만드는 봄이지만
온갖 꽃들이 불붙은 듯 피었다가 썰물 빠져나가듯 지고
연초록의 새 잎들의 푸르름이 더욱 짙어질 무렵이면
잠시 머문 듯 하다가 여름에 밀려 저 멀리 떠나가곤 해서
피었다가 금새 지고마는 봄꽃과 더불어 늘 아쉽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4월에 피어났던 하얀목련이 지고
5월의 집 뜨락에서 핏빛 목련이 피어날 무렵이면
남녘의 산하를 철쭉이 온통 빨갛게 물들이곤 합니다.

산하 어디를 가나 진달래와 철쭉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라지만
장흥과 보성에 있는 사자산과 일림산의 철쭉은
아스라히 뻗어있는 능선이 온통 불에 타는 듯 빨갛게 뒤덮혀 피어나
해마다 황홀한 풍경을 연출해 놓곤 합니다.

지난해에 때를 맞춰서 일림산에 철쭉산행을 갔다오는 길에
금낭화 한 뿌리를 사와서 베란다에 심어놓고 길렀는데
겨울이 채 가기도 전에 일찍 싹을 올리더니
며칠전엔 예쁜 꽃을 피워놓았습니다.

금낭화는 생김새가 복주머니를 빨랫줄에 여러개 걸어놓은 듯
곱고 앙증맞은 꽃망울을 20개 많게는 30개 정도 주렁주렁 매달려 예쁘게 피는데
처음 키워보는 탓에 습성도 제대로 모른 채 비료와 물을 줬더니만
일년에 딱 한번 그것도 겨우 며칠만 꽃을 매달아 놓을 것이면서도
뭐가 그리 못마땅했는지 겨우 꽃망울 세개만 달려놓았습니다.

바쁜 4월이 가고 모란이 피어나는 5월이 오면
조금은 마음의 여유로움도 생겨날 것 같아
지척에 있는 강진의 영랑 시인의 생가도 가서
그곳에서 피는 모란꽃도 한번 보고싶은데
예전처럼 바램만 하다가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일들을 미리 계획하고 있다 보면
이래저래 생겨난 일의 뒷전으로 미뤄놓거나 접는 일이 허다하나
아무런 계획도 없이 어느날 훌쩍 떠나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봄인가 싶은데
어느새 훌쩍 떠나가곤 하는 계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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