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소쩍새 우는 밤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8:46
(2003년 4월 28일 월요일 )

실바람에 아카시아향기 실려오던 지난 해 어느 날 밤부터
어디선가 끊일 듯 다시 들려오곤 했던 소쩍새의 울음소리에
밤마다 마음을 졸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가을 어느날부터 아주 뚝 끊어져버린 소리에
더 살기 좋은 다른 숲으로 떠나버린 듯 싶어서 아쉬움이 적지않았는데,
소쩍새는 추위가 오기 전에 떠났다가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이면 다시 찾아오는 철새라는 사실을 알고 부터
때가되면 다시 찾아 올 수 있을런지 걱정스러워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 새의 울음소리를 처음 들었을 땐
부끄러운 원앙이나 슬픈 따오기를 닮았으려니 생각하고 있다가
무서운 올빼미를 쏙 빼닮았으면서도 아주 쪼그마한 숫컷이
밤마다 암컷을 부르는 소리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나의 어렴풋한 짐작이 많이 빗나가서 사뭇 겸연쩍어 했던 적도 있습니다.

올 해도 어김없이 작은 숲 양지쪽에서 부터 봄바람이 일기 시작하고
갓 깨어난 온갖 생명들이 한 낮의 맑은 햇살에 눈이 부셨던 날
어디선가 소쩍새 울음인 듯 싶은 소리가 밤 바람에 희미하게 들려옵니다.

반가운 마음에 창문을 열어젖히고 귀 기울려 들어보니
아카시아 꽃이 피기엔 아직은 때가 이른데도
밤이 깊어 갈수록 또렷하게 들리는 소리는
틀림없는 소쩍새의 울음소리입니다.

나는, 새들이 내는 소리를 노랫소리라 해야 하는데도 울음소리라 하는지
가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소쩍새에 얽혀있는 슬픈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올빼미를 닮았으면서도 쥐가 아닌 매미나 잠자리등의 곤충을 먹든 말든
들려오는 소리는 가슴속에 맺혀있는 응어리를 뱉어내는 듯 싶어서,
나는 늘 소쩍새에 관해서 만큼은 울음소리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까마득한 어린시절 옛고향의 여름날 밤
대밭 숲속 감나무에서 들려오는 소쩍새의 울음소리에 밤이 깊어가는 때
보릿짚 모깃불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마당의 멍석에서
엄마가 내어 주시는 무릅을 배게삼아 누운 채
모시적삼 속 젖가슴을 고사리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살랑살랑 손 부채에서 묻어 나오는 어머님의 향기에 흠뻑 취해
내 눈만큼 초롱한 밤 하늘의 별들을 헤다가 스르르 잠이 들곤 했었습니다.

호롱불 켜놓은 사랑방에서도,
모기불 연기 휘돌아 앉은 툇마루에서도,
반딧불 깜박이는 칠흑같이 어두운 동구밖에서도,
멀리 램프불 가물거리는 솔밭옆의 원두막에서도,
소쩍새 울음소리로 깊어만 가던 옛 고향의 여름밤.
내 어머님의 한숨짓는 소리는
세상을 떠나신 나의 외할머니를 그리워하시며
눈물을 삼키는 소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쩍새의 울음소리엔
내 옛고향 여름날 밤의 풍경들과,
그날 밤 어머니의 긴 한숨이 깊게 베어있는 것만 같아서
내 마음이 마냥 애닯습니다.

집 언저리 숲에서 밤마다 들려오는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엔 또 멀리 사라지겠지만,
지난 해 어느 여름날
들려오지 않은 소쩍새 울음소리를 기다리느라 밤이 깊도록 마음졸였던 날처럼
올 여름에도 몇 날은 그런 기다림으로 밤을 지새지나 않을런지 모를 일입니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밤이면

별이 초롱한 여름밤 옛 고향집 마당의 멍석에서
어머니의 무릅을 베고 잠이 들던 아이가 그랬듯이
아무런 걱정없이달콤한 잠속에 빠져들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