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4월 29일 화요일 )

오래전에 단 한번 가 봤던 친구의 고향마을에 대한 기억은
깊은 계곡 사이로 넓은 강이 흐르고
강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에서 버스를 내려
바닦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에 고기들이 노닐던 광경을 넋을 잃고 보다가
다시 실개천을 따라 산기슭의 동네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입니다.

어머니를 모시러 가는 날 아침,
밥상머리에 지도를 펴 놓고 그 위에 그려진 길을 따라 미리 가 보는데,
늙은이의 얼굴에 그어진 주름만큼 새로 난 길들이 숱하게 실금으로 그어져 있건만
아직도 그곳은 첩첩 산중이란 것을 지도를 보면서 새삼 느껴집니다.

미리 지도를 보고 떠나온 탓에
강을 가로질러 튼튼한 다리가 새로 놓인 길을 건너서
마을이 있는 곳까지 쉽게 오긴 했어도
예전에 걸어서 찾아갔던 그 마을이 어딘지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요즘엔 예전처럼 사람들로 북적대던 시골도 아니기에
멀리 논못자리를 하는 곳까지 가서 길을 물어보니
왔던 길을 한참을 되돌아서 가야 한다고 합니다.

자운영이 가득 피어있는 논엔 꿀을 따러 온 꿀벌소리가 요란하고
마을 앞을 흐르는 실개천엔 맑은 물이 철철 흐르는 광경은
심산유곡에 자리한 마을이 아니고선 요즘 어디에든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농로를 따라 동네 앞 빨래터에 이르렀을 때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노인네 한 분이 서 계시다
승용차에서 내리는 우리에게 다가 오십니다.

행여나 우리가 찾아오지 못할까봐서
동네 앞까지 나와서 기다리셨다는 친구의 어머니,
13년전 뵐 때까지만 해도 아직 고운 모습이 남아 계셨던 분이
이젠 백발이 되셔서 우리를 반기며 눈물을 훔치십니다.

"애들 아부지가 가신지 올 해로서 33년째여,
내가 마흔 둘에 혼자 된 이후로 내 생각만 하고 살다가 보니
아이들 친구가 와도 따뜻하게 밥 한끼니 못 먹여 보냈다는 생각을 하니
자네한테 미안하네............."
쌀 한가마의 밥은 족히 먹었을 내게
마음만큼 다 해주지 못함에 대한 서운함을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머님을 모시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철쭉꽃이 가득히 피어있는 숲속의 주점에서,
그리고 아내가 미리 예약을 해 둔 복어요리집에서,
올해로써 일흔 다섯이 되신 어머니께서는
옛 이야기에서 부터 친구하나 없는 낮선 곳의 외로운 일상의 이야기까지
쉼없이 쏟아내고 계십니다.

먼길을 오셨는데 하룻밤이라도 묵고 가시라는 권유에
"큰아들네 집에도 못들렸는데 우리 큰아들이 알면 서운할거여" 하시면서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아쉬움을 달래십니다.

"영주권을 최근에야 얻어 마음만 먹으면 돌아 올 수 있기에
앞으로는 자주 오시겠다"는 친구의 어머니를
하는 수 없이 포항에 계시는 친구의 형님댁으로 보내드릴려고 터미널로 나오는데,
토요일 퇴근시간이라서 길 거리가 온통 주차장입니다.

예약해놓은 버스를 놓치게 되면
다음 버스는 막차인 여섯시라는데 길이 막혀서 난감하기만 합니다.
생각타 못해서 골목길로 차를 몰아서 터미널 가까이에 접근을 한 후
아내의 도움으로 겨우 태워드리다 보니
여비는 커녕 잘 가시라는 인사 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말았던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릴 것만 같습니다.

"이별의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는 말도 이럴 땐 거짓말 같습니다.
언제 다시 뵐수 있을런지는 모를 일이나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터미널로 향하시는 친구 어머님의 뒷모습이
내 가슴속에서 애틋한 그리움으로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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