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들꽃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8:36
( 2003, 4, 20 )지난 산행땐 양지쪽에서 서둘러 핀 진달래꽃이 하도 반가워코끝을 가까이 대고 한참동안이나 가냘픈 향기를 맡았습니다.그러나 벌써 다 저버린 듯 진달래 꽃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산그늘 속엔 철쭉이 탐스럽게 피어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산길을 따라서 수줍은 듯 다소곳이 피어있는 들꽃들,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언제봐도 싫증나지 않은 꽃, 그 중에 봄에 피어난 꽃들은 유난히 가냘프게만 느껴집니다. 
저는, 화려하고 향기짙은 화초들보다억샌 잡초의 틈새를 비집고 버텨내는 강인함과은은하고 가냘픈 향기와 청초함까지도 느낄 수 있기에들에 피어난 꽃들을 더 좋아합니다.오늘은 산길에서 제비꽃, 각시붓꽃, 현호색을 만났고 이름모를 꽃들은 카메라에 담아 와 정리를 해 놓고 틈나는대로 잘 아는 이에게 물어서 이름도 붙여놓을 생각입니다.
이렇게 모은 들꽃들은 썩 괜찮은 사진첩이 되어서무료할 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곤 하는데 아무리 잘 찍어 아름답게 보이는 들꽃사진일지래도내가 만나고 내가 찍은 꽃이 아니라면 절대로 들여보내지 않기에나의 들꽃 사진첩엔 내 통고집이 그대로 묻어있습니다.그래서 그런지 들꽃이 피어있는 사진첩을 뒤척이는 순간만큼은꽃이 피어나던 자리와 주변풍경은 물론이고계절까지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어서 마냥 좋습니다.
따뜻한 봄날 양지녘에 고개숙여 피어있는 제비꽃의 모습에서 기다림을,여름날 호수의 작은 너울에 흐느적거리는 수련의 모습에서 평온을,가을날 강아지풀의 보숭한 털끝에 맺힌 이슬이 아침햇살로 수정처럼 빛나는 광경을 상상하며 내 마음도 그처럼 맑게 정화됨을 느끼곤 합니다.산길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하차잖은 들꽃,무심히 걷다가 밟혀 짓뭉개져도 마음 아프지 않을 들꽃이었지만 내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무료함도 달래 주기에내 들꽃 사진첩에 모여있는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앞으로도 들꽃을 모으는 일에 소홀함이 없겠지만들이나 산길에 피어난 들꽃을 바라보는 내 마음 또한좋은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움과 기쁨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나와 내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또한은은하고 끈끈하며,진하지 않아서 쉬 싫지않은 향기의 들꽃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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