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잃어버린 계절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7:12

( 2002년 10월 25일 금요일 )

인간과의 생존경쟁에서 승리를 하고 있는 놈들은
모기와 바퀴벌레라고 하던가요?

이 놈들은
밝은 대낮엔 어디로 숨어버리는 것인지 보이질 않다가
밤만 되면 제 세상인 듯 설쳐대는 꼴이 참으로 가관입니다.

한때 무수히 설쳐대던 바퀴벌레는
아파트에서 집단 퇴치작업을 한 뒤로 아직 눈에 띄질 않고 있으며
설령 있다고 해도 혐오스러울 뿐 워낙 알아서 도망을 잘 쳐 주곤 해서
녀석들에 관한 그리많은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기란 놈은 실로 대단하기 그지없습니다.
죽는 한이 있더래도 피는 빨겠다는 강한 집념,
들어올 틈이라곤 없는데도 어디론가 나들락거리는집요함,
계절에 상관없이 종횡무진하는 왕성한 활동성,
피를 빨아대는 순간에도 위기의 순간엔 감쪽같이 사라지곤 하는 민첩성 등
평소 나를 귀찮게만 하지 않는다면 본받고 싶은 부분이 너무나 많은 놈입니다.

가을은 깊어 찬바람이 쌩쌩 불어오는데도
계절에 상관없이 밤이면 밤마다 집중공격을 해 대며 잠을 설치게 하는 녀석들,
머리맡에 놓아둔 파리채를 찾아들고 불을 켜는 순간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불을 끄고 누우면 또 다시 나타나 아무곳이나 찔러대는 놈들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채 아침을 맞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내가 사계절 중에 여름을 싫어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모기 때문이었는데
요즈음엔 가을에 더 극성이니
이러다가 그 놈 때문에 가을까지도 싫어지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주변에 숲을 두고 살면 여러가지 좋은 점도 있긴 하지만
가을까지도 극성을 부리는 놈들 때문에
공기는 좋지 않더래도 놈들한테 시달리지 않을 것 같은 도심 한 가운데로
차라리 이사를 가고싶은 생각도 없질 않습니다.

하룻밤 단잠을 설쳤다는 생각에
새벽부터 "놈"이란 말을 서슴없이 쓰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론, 불타는 듯 단풍이 곱게 물든 풍경을 상상하며 산에 갔다가
앙상한 나뭇가지에 삭풍이 휘도는 겨울풍경을 보고 내려온 허탈함때문에
더 그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어제는 가을 옷 한벌 사 주겠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시내에 따라 나섰으나
가을옷은 모두 철수를 시키고서
더 이상 필요도 없는 겨울옷만 팔고 있었으니
나는 이렇게 복도 없습니다.

요즘 날씨로 보면 조석으로 많이 쌀쌀하여
가을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겨울같은 느낌이 더 들긴하지만
내게 있어서 올 가을은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잃어버린 계절' 아니면 '빼앗긴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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