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10일 화요일)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눈을 뜨고서
베란다에 나가 유리창을 열어 젖히고 밖을 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렸을 적에 이른 잠에서 깨어나신 아버지께서
새벽공기가 차거운데도 언제나 그렇게 하셨던 것은
날씨에 따라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결정을 해야 했던 때문이었겠지요.
비가 오면 집안에서 할 일을 준비해야 했을테고
금방이라도 비가 뿌릴 것 같으면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들녘으로 나가
베어놓은 곡식들을 서둘러 묶어서 들여야 했을테니 말입니다.
아버지의 그런 생활습관은 농한기인 겨울에도 마찬가지여서
문을 열면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서 춥기만 한데도
방 문을 열어놓은 채 마루맡에 앉아서 하늘을 내다보시던 아버지께
"아부지 추워 죽겄소"하며 이불속으로 얼굴을 파묻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저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닌데도
옛날에 아버지께서 그리 하셨던 것 처럼
아침이면 언제나 창문을 열어서 밖을 내다보곤 합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새벽의 맑고 시원한 공기가 좋아서,
그리고 가끔은 오늘처럼 하얀 눈으로 소복히 덮혀있는 새벽풍경이 좋아서 입니다.
우리 아파트의 입구는 북쪽으로 경사가 많이 진 탓에
어린 아이들에겐 아주 좋은 썰매장이 되곤해서
오늘같은 날엔 아이들이 썰매를 타며 제잘거리는 소리로
아파트가 떠들석 할 게 틀림없습니다.
반면에 어른들 한텐 내린 눈이 모두 녹을 때까진 승용차는 고철덩어리로 전락을 하고
눈으로 다저진 경사로에서 미끄러져 골절사고도 몇 번 있었던 터라
어른들에겐 오늘 아침의 출근길이 걱정되기도 합니다.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이처럼 눈에 비춰지는 아름다움속에편안히 파묻혀 있다가도
꿈에서 깨어난 듯 일상에 대한 걱정으로 생각을 바꾸거나
'생업'이라는 현실의 테두리 속에 의식조차 늘 얽메어 놓고 있습니다.
늘 나를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또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의 굴레,
우리가 현실이라고 말하는 그 테두리는 질기고 굳게 옭아메는 것만 같아서
때론 뛰어넘거나 부숴버리고 싶은 생각도 없질 않습니다.
굴레를 벗고 날아간다 한들
이보다 더 나은 또 다른 곳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아내가 끓이는 된장국 냄새가 코끝에서 나의 하루를 깨웁니다.
아름다운 설국을 보며 애틋한 내 고향집의 꿈을 꾸다가 말고
미끄러운 눈길을 걱정하며 창문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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