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잠을 못자는 병

(2002년 12월 13일 금요일 )

저녁밥이 체중증가의 원인이 된다고 해서
평소엔 저녁밥은 먹지 않는데도
어제는 손님이 있어서 부득히 저녁밥을 함께 먹었습니다.
누군가가 이런 나에게
하루에 세끼니는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일이 아니라서
끼니를 거르는 일은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경고를 합니다.

솔직히 말해 나의 체중이 날이 갈 수록 늘어나는 원인은
나의 식탐으로 인한 과식과 간식이 문제이지
하루 세끼의 밥을 챙겨먹어서 생겨나는 문제는 아니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배가 부르지 않게 먹고 먹은 만큼 운동을 하면 될 일임에도
식탐을 통제하지 못하고 운동 또한 게으름 탓에 하질 않으니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한 결과임에 틀림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내지 못하면 결국엔 병이 된다는 것도
어제 친구녀석을 보며 비로소 실감을 했습니다.

잠을 자지 못하는 일이란
내가 직접 경험을 하지 않고 말로만 들어서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친구의 상기되어있는 표정을 보니 정말로 심각할 일입니다.

극도로 예민해 있는 상황이라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디 특별히 불편하거나 아픈 곳은 없냐?"는 상투적인, 그야말로 일상적인 말 한 마디에
"넌 의사가 아니니 그런 말은 묻지마라!"라며 단칼로 자르는 친구가 적잖게 당혹스러웠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런 말을 들을 땐
많이 서운하거나 오해를 하기 딱 좋은 말이나
녀석의 상황을 미리 듣고 있었던 터라 걱정부터 앞섭니다.

잠을 못 자서 그러는지 녀석의 눈에 예리한 빛이 보이고
잠시도 앉아있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옆에서 함께 부대끼다가 몰골이 흉해있는 부인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 봐도
특별하게 이상한 점도 없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나
녀석은 집안 걱정에 직장 또한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니
여러가지로 걱정과 불안까지 함께 겹쳐있는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내게
"세상살이엔 가끔은 욕도 얻어먹고 살아야 할 만큼 마음이 모질어야 한다"고 합니다.
남에게 못할 짓을 하는 일이야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내게 득이 되는 일이라면
양보 보다는 먼저 챙기려는 마음 정도는 갖고 사는 것이 좋을 일입니다.

마음이 선천적으로 여린 사람들은 평소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삽니다.
담력이 크지 못하거나 세심한 사람들에게 있어
작은 것도 쉽게 털어내지 못하고 모두 담고 살기에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조절하지 못하고서
적잖은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고서 느껴지는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먹어서 살이 찌는 걱정은
녀석의 잠못 이루는 고통에 비하면 사치스러운 짓에 불과합니다.
혹시 그것이 마음의 병 보다는
어떤 신체 부위에서의 물리적인 영향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병원을 불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도 답답해서 그런 생각까지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