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내 깊은 뜻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7:19

( 2002년 12월 17일 화요일 )

쉬는 날에 그냥 집에서 하루를 보내기엔 아쉬울 것 같아서
집에 틀여박혀 있는것이 좋겠다는 친구놈을 기어이 불러 내어
내 집처럼 들락거리는 무등산으로 향합니다.

비가 올 것 같아서 비옷은 가져 갔지만
비가 와도 상관하지 않을 만큼 뱃심이 있거나
억지로 불러낸 친구놈의 눈총을 무시할 만큼 무딘 것은 아니라서
비가 쏟아지기 전에 산행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때보다 길을 걷는 마음이 바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다시 쏟아질 것만 같은 어두컴컴한 날씨,
하필이면 지난번 비에 산길은 아직도 질퍽거리고
짙게 내려앉은 구름에 몇 발자국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금당산 새벽운동도 게으름 피우느라 하지 못하다
거의 2주일만에 산길을 걸으니
평소보다 다리가 무겁고 숨은 헐떡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산을 오를 땐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기진맥진해 있다가도
정상에 올라서면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기분또한 상쾌해지니
그 힘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만 맛볼 수 있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그런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흘린 땀을 씻어내리면
몸도 마음도 한결 상쾌해지고,
적당히 피곤한 몸으로 따뜻한 방에 누우면
나도 몰래 스르륵 깊은 잠에 빠져들곤 해서
비가 올 것만 같은 날씨에도 산으로 가는 첫째 이유이기도 합니다.

년말이 가까워 오니
평소에 소식이 뜸하던 사람들한테서 연락이 옵니다.
그간 소원했으니 회포라도 풀자는 것이겠지만
송년회를 빌미로 해서 술 한잔 하자는 속셈임을 모를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불러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고맙고 반가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내키지 않거나 번거롭게 여겨지는 부름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불려가는 짓을 잘 합니다.
평소에 언제 어디서든 누가 되었든
함께 잘 어울릴 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부러웠기 때문입니다.

때가 때인지라
만나는 자리엔 술이 오갈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무리하지 않는다면 잘 견뎌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도 있습니다.

내가 산행을 하며 건강을 챙기는 둘째 이유이기도 하며
혼자서의 여유로운 산행 보다
조금 번거롭더래도 친구녀석을 기어이 산으로 끌고가는 내 깊은 뜻을
설마 알기나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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