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산다는 건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7:22
(2002년 12월 22일 일요일)

계절이 바뀔 때나 겨울이면
다른 때보다 상가 조문을 자주 다닐 일이 생기곤 합니다.

세상 하직은 날씨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직장의 게시판을 보면 금방이라도 알 수 있습니다.

따뜻하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다거나,
여름과 가을 사이, 겨울과 봄 사이 조석으로 기온차가 심할 땐
직장의 게시판엔 어김없이 부음장이 많이 붙습니다.

혈압, 뇌졸증, 심장마비.......
나이가 들 수록 옷도 따뜻하게 입어서
기온변화에 잘 대처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공감을 하곤 합니다.

어젠 고향에 사는 한 친구가 모친상을 당했다는 연락이 와서
일과를 빨리 끝내고 조문을 다녀 왔습니다.
학교다닐 때 마을이 서로 달라 한번도 같은 반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를 졸업한지도 35년이 되었으니 어렸을 적 얼굴마져 흐릿해진 친구지만
형편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서 연락되는 친구들 몇명이서 함께 내려갔습니다.

동네 마을이 매의 부리처럼 바다쪽으로 튀어나왔다고 해서
겨울이면 세찬 북풍이 맞닿을 매부리라 불리는 동네,
마침 도착할 무렵 바닷물이 가득 밀려들 때라
파란바다 하얀파도가 일렁이고 있는 겨울바다를 한참동안 바라봤습니다.

그곳에서 바라보면
내가 나고 자랐던 감방산와 책보를 메고 걸어다녔던 신작로와
지금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만 백사장이 있었던 바다도 보여서
조문길만 아니라면 한달음에 가고 싶지만 마음 뿐입니다.

매부리에 뉘엇뉘엇 해가지는 풍경은 유난히 곱지만
절룩거리는 몸으로 문밖까지 배웅을 나온 친구를 뒤로 하는 마음은
애처롭기 그지 없습니다.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유산도 없고,
오래전에 아내도 세상을 떠나고,
마음을 기댈만한 자식도 없이 막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몸 조차 성하지 못한 친구에게 있는 것이라곤 오직 하나,
마음 붙이고 사는 고향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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