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11. 2. 3. 07:31

머릴 자르지 않고 여섯 달을 살아 봤다.

장발 단속을 하던 시절이었다면

머리 앞뒤로신작로를 내고도 남을 일이다.

10여일동안 수염을 깎지 않고 살아 봤다.

80살을 살면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만한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간섭받을 일이 없어서그냥 그대로 뒀을뿐이다.

그러나사람의 몸에서터럭이 길어지는 만큼

번뇌도늘어난다는 걸 미리 생각지는 못했다.

사막의 한 복판에 내동댕이 쳐진채휘청거리는

영화 속의 한 장면에서 있는 것 같은 그런 날들이 며칠 동안이나 계속되고있었다.

이쯤되면 바닥까지 다 내려간 셈이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주저앉거나, 허우적거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내려왔던 길을올려 봐야한다.

왜 여기까지 왔냐고자신에게 물을 일은아니다.

내 의지완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사냐고 자꾸 되풀이 해 묻는 건 몰라서가 아니다.

자신에 대한체찍질일 뿐이다.

남한테 두들겨 맞을 때보다

자학할 때의 고통이 몇 배 더 크다.

왠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는어른들을 보면서

나이가 들면 감정이 무뎌져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속으로 우는 방법을 안 뒤로는

사람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남들이 오래 전에 다 아는 사실들을 뒤늦게서야깨닫는다.

남들보다 뒤쳐진 삶을 사는 까닭이다.

사람들은일탈을 꿈꿀 땐머릴 자른다고 한다.

그런다 해서금새 달라질 건 없겠지만

한 번쯤 시도해 봄직도 할 일이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허둥댄다지 않던가?

도저히 견뎌낼수 없을 땐 그렇게라도 해 봐야 한다.

하지만 끝은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의미일 뿐이다.

이 대로 이 자리에서허우적거리는 것 보다는

고통이든 번뇌든가리지 않고 즐겨야만 할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작을기다리며......

340여일을 그렇게 살았고

그 마지막 날은 불과 십여 일 전이었다.

떡국 끓는 냄새에 군침이 돈다.

2011, 2, 3. 설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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