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오는 광고 전화나 문자는
대부분 나 하곤 상관없은 일들이라서 관심을 두지않고 있었으나
날이 갈 수록 횟수가 늘어나 적잖게 신경이 쓰입니다.
그 중에서도 보험을 권하는 경우는
"당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라는 뉘앙스가 바탕에 깔려 있어서 뒤가 개운하지가 못하고,
신용조회 안 하고 서류없이 돈을 빌려주겠다는 경우에 있어선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를 붙혀놓고 접근을 하려는 것 같아서 심사가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이해하는 쪽에서 바라보는 건
우체국, 경찰서 등등을 사칭하거나
여론조사를 한다며 전화기 버튼을 누르라는 등의 고단수로 사기를 치는,
앉아서 남의 것을 챙겨가는 도둑들과는 비교를 해선 안되는 정직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꾸려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경우완 다르긴 해도
나 자신 또한 소수의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원치않을 수도 있을 전화를 해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들에게 있어서 뒷바라지라는 의무의 굴레를 벗은 뒤론
그 동안 가장노릇 열심해 해 왔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남은 생을 사는 동안 아내한테 눈치밥은 안 먹을 것 같다는 배쨩좋은 생각에
요즘들어선 일하는 것 보다 노는 게 더 좋긴 합니다.
나이 든 탓입니다.
마음편히 놀다보면 일 주일이, 한 달이 하루처럼 물흐르듯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런 일상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에서도
하고 놀 게 없는 날엔 옆사람 눈치를 살필 때도 가끔씩은 있습니다.
지난 해 막바지에서 수장이 바뀌다 보니
조직개편이니 인사이동이니 하면서 차일피일 미뤄지던 일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두 달이나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다섯 달을 실컷 놀았으니 남은 일곱 달 쯤은 일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욕심같아선
여섯 달을 일하고 남은 여섯 달은 마음편하게 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내년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올 핸 40명의 특정인을 만나야 하는 목표가 정해졌습니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선
미리 전화를 해서 방문해도 좋겠냐는 의사를 물어야만 합니다.
권하는 입장에서 대의적 명분을 앞세우긴 해도
선택하는 이는 내가 아닌 상대방이라서,
그리고 만나하려는 취지를 제대로 이해시켜야만 할 일이라서,
말주변이 없는 사람으로서 어려움도 없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원치않는 일이라면
내 자신 또한 광고전화를 해대는 이에 불과할 따름이라서
늘 조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며칠 전의 일입니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전화를 겁니다.
" 저는 ㅇㅇㅇ의 아무개입니다 xxx 맞습니까?"
"예, 왜 그러세요?"
취지와 목적을 자세히 설명을 하고서
업무에 지장없는 시간을 선택케 하여 방문 일정을 잡습니다.
하루의 업무가 정해지는 순간입니다.
그로 부터 이틀 후,
약속시간 보다 30여 분 일찍 현장에 도착을 합니다.
길을 찾는 것 쯤이야 네비게이션이 있어 걱정할 일은 아니나
가끔은 혼돈을 일으켜서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던지라
그런 일을 되풀이하긴 싫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뭔가 잘 못 되었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허름한 정문 안쪽으로 무질서하게 널부러져 있는 폐자제들,
차를 세워놓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집기엔 먼지만 쌓인 채 아무런 인적조차 없습니다.
"그저께 전화했던 ㅇㅇㅇ 아무개입니다."
"예, 왜 그러세요?"
"약속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안 계시네요?"
" 그 회사는 작년에 폐업을 한 모양입니다. 아마도 이 전화번호는 그 회사에서 썻던 번호인 것 같아요"
"..........."
"그럼 전화받으신 분은 뉘세요?"
"그 회사하곤 상관없이 그냥 세탁소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 그저께 통화할 때는 왜 그렇게 말씀을 안 하셨습니까?"
"미안합니다."
"...................."
하루의 일과가 통째로 어긋나는 순간입니다.
이마에 땀이 흐르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건
일찍 시작된 여름날의 따가운 햇살때문만은 아닙니다.
보고서 빈칸을 채워 넣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이런 써글놈이~!!!
201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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