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雨曜日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12. 4. 10. 19:36

희뿌연 안개가 자욱한 아침,

밥숫가락을 놓자마자 서둘러옷을 갈아 입습니다.

무심결에창밖으로 우산을 받쳐든 사람들이출근길을 재촉하는광경을 보는 순간

입었던 옷을 다시벗어버리고 맙니다.

 

예전에

잘 맞질 않아서 구라청이라 비아냥거리던 때에 비해

기상청의 일기예보에 시간까지 맞춰주는 듯 싶은날씨가 참 얄궂습니다.

오랜만에 산엘 다녀오려던 생각을 접어야 하는 순간입니다.


술에 흥건히 취했을 때만 전화를 걸어 오는 친구녀석이

어젯밤 늦은 시간에"세상은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자신한테 타이르듯 주절거리던 말이 생각납니다.

 

오늘처럼 비가내려 길을 막아서는 날이면

하늘의 뜻이려니 하며 집에 눌러 앉아

이런저런 얽힌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도순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4월을 맞은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복판에 들어서 있습니다.

아무 것도 생각 안 하고 그냥 맘편하게 지내고 싶었던 1월과

감기와 몸살에 폐렴까지 겹쳐녹초가 된 채2월을 송두리째 날려보내고

잡히는 게 없어 허우적거리느라 심난스럽기만 했던 3월의 또 한 달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달과 달이, 계절과 계절이 도막내놓은 생선처럼 서로 단절된 건아니지만

내가살아왔던 지난 3개월만큼은, 그리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4월까지도

끝과 시작의 경계가잘려진 생선도막인냥 확연하게느껴집니다.

 

그 토막들 속엔 마음편히 살았던날들과

무언가의 즐거움 속에 흠뻑 젖은채 살았던 날들도 많았건만

온갖 잡념들로 심난스레 살았던 날들이 더 많았던것처럼

그리고 그런 날들이 기억속에 더 오래 머무는 건 무엇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문턱에서

이곳저곳 친구 자녀들의 혼례 소식이 전해 올 때마다

아비의 조급함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도 느긋하기만 한 내 딸녀석을 생각하곤합니다.

 

이럴 때면

평생을 함께 할인연을 두고

밥상에 놓여진 반찬을 골라 주어먹듯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조급한 마음을 애써 다독거리곤 합니다.

 

4월로 들어서자마자

새로운일들이 봇물 터지듯쏟아져무척 긴장이 되나

시작이반이고 준비만 잘 하면별 문제는 아니라고

애써 자위를 해 봅니다.

 


매화와산수유가 피었다는 소식을 들은지도 벌써 여러날째이고

길거리의 벚꽃들이 꽃망울을 앞다퉈 터뜨리는 광경을 바라보면서도

나는아직도잔설속에피어난 복수초를 만났던 날을 살아가고있습니다.

 

비에 젖은 거리에 서서히어둠이 내리고 있습니다.

홀로 남겨진 집에서

쉼없이 오가는 먹구름도 바라보며,

분주히 오가는 거리의 자동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가 살았던 지난 날들을 뒤돌아 보기도 하며,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상상도 미리 해 보며......,

 

비에 갖힌 것처럼살았던雨曜日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밤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한층 푸르러 상큼할봄빛을,

화들짝 피어나눈송이 흩날리듯 지는 벚꽃의 향연을,

불붙은 듯 피어화사한진달래꽃 산길을걷는 꿈도 꾸고 싶습니다.

 

내일은 맑은 햇살과 봄바람에 꽃내음 물씬나는

오늘보다 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