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버스에서내리는 순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반기는옛 동료들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한결같이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라서
몇몇이서 미리 약속을 하거나 산길에서 우연히만나함께 걷던 때도 자주 있었으나
약속없이여섯사람을한 자리에서만난 건처음있는 일입니다.
산으로 향하는 길에서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길목에 있는 가계로 들어 가막걸리 몇 병을사서베낭에 챙겨넣습니다.
내가 술을 거침없이 마셔대던 십 수년 전까지만 해도
퇴근길 또는 대소사의 마주 앉은 자리엔
으레 술이 있어야 이야기가 재대로 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들이 만나는 날이면헤어지기 전엔어김없이 술집에 들러
세상사는 이야기를 안줏거리삼아 술을 마신 뒤 헤어지곤 합니다.
인간관계에있어 술이 절대적인 건아니지만
서먹하거나 고단한 이들을서로 이어주는 썩 괜찮은 연결고리임엔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술이란 게 참 묘한 힘을 갖고 있어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가로놓인벽같은 건 소리도 흔적도없이 허물어 버리고선
한데 섞어버리는성능좋은 무기와 같습니다.
일상에서좋은 느낌들은짧거나 쉬 잊혀지고
심난스럽고 고단함 같은 좋지않은 것들은 한결같이길고 오래 남는다는건
나 혼자만의 느낌일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들을 혼자서 삭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론 지인들과술자리를 함께 하며너털웃음이라도 몇 번 웃어대다 보면
기분은 어느새 일상으로 되돌아 와있을때가 더러 많이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날처럼 술을 마시는 이들과 함께 할 때면
나는 늘 가장자리에서 맴돌 뿐입니다.
산 중턱쯤 쉼터에서벌어진 술자리에선
인사치레로 받아놓은 술 반 잔을 자리가끝날 무렵에야 가까스로 비웁니다.
하산하여 처음들른주막에서 또 다시 받아놓은한 잔을
술잔끼리들이댈 땐그냥 내려놓기가불편해서 한 모금씩 하다보니
자리가 끝날 무렵엔 받아놓았던잔이 다 비워집니다.
설령그 자리에서대 여섯잔을 더 마셔댄다 해도그리 문제될 건 없으나
십 수년 전 꽉 막혀서숨쉬는 일 조차제대로 못할만큼 막힌코를
강제로 뚫어내는지긋지긋한 행사를호되게 치룬 뒤론
"술이 재발의 원인이 될수도 있다"는 의사의 조언을늘 되새김질 하며 살아왔습니다.
내 지난 삶에 있어병원엘 나들락거린 날들보다 더 심난스러운 때도 없었습니다.
세상살이에 있어 술이 맺어주는 인연과일상의 재미 또한적잖지만
그런 까닭에 비록 내 남은 삶이 고단하다 할지라도 술의 유혹을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오래 살기 위한 몸짓이 아니라
허약하게 태어난자식을 바라보며평생을안쓰러워 하셨던,
그리고꺼져가는불꽃을온갖 희생으로 되살려주신
내 어머님에대한 나의 약속이자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단 하루를 살더래도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은 바램일 뿐,
마신 뒤면 으레 가라앉고 마는 생리적현상을미리 걱정하거나
생일이라날 낳아주신 부모님이생각나서
돌아가신분까지 앞세우는 건결코 아닙니다..
권해서 마시게 하는 예전의 술문화가
자기주량만큼알아서 마시는 분위기로 바뀐 건
이런 내게 있어서도 참다행스러울일입니다.
201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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