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관매도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10. 8. 9. 11:12

선착장에서부터 최소한 300여m쯤 길게 늘어선 승용차 행렬과 매표소 앞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는 순간부터 불길한 예감이다.

만약 시간을 쪼개어 바삐살던 때 먼길을 달려 와서야 배가 뜨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황당했을 게 틀림없다.



여행에 목이 말라 안달하며 사는것도 아니면서 집사람들을 두고 50을 훌쩍넘긴 녀석들 둘이서만 떠나온 사실을 두고 바다의 용왕님한테 괘씸죄에 걸려든 건 아닌지 모르겠다.


표를 파는 이에게 배가 언제쯤 떠날 수 있을지 물어보지만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는 그들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안에 든 사람들의 열기를 뿜어내기엔 역부족인 듯 매표소 벽에 걸린 조그마한 에어콘의 헐떡거림이 힘겹기만 하다.

이럴 땐 차라리 매표소 밖 그늘에 자리를잡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땀을 식히는 이들이 더 마음편하게 보인다.

막연한 기다림으로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기다림에 지친 복영이가 어선을 접안하는 곳에 간단하게 탠트를 폈다.

그 덕분에 무료함과 무더위와 짜증은 간간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에 날려보낼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울 일이다.


살면서 기다리는 일만큼 재미없고 지루한 것도 없다.

그중에 끝이 어디인지 모를 막연한 기다림이야 말로 고된 노동을 할 때보다더 힘이 드는 일이다.

기다림이 계속되는 동안 설마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우스울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하는 생각도 오후 세시가 지나면서 부터는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가까운 아무곳에서라도 하룻밤 묵고 갈것인지 하는 고민으로 차츰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해질녘 쯤, 내일 돌아와야 하는 이가 문을 열고 불쑥 들어오자 으아해 하는 아내에게 "마누라를 혼자 두고선 도저히떠날 수가 없어서 되돌아 온 사람이 기특하지 않냐"며 계면쩍게 웃고만 말았다.

실로 황당한 하루가 아닐 수 없다.

그날 저녁 막 잠에 취하려는 시간에 친구 남양이한테서 전화다.

모레아침 관매도에 가자는 친구에게 굳이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 건 그곳에 가기 싫다거나 안 가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일이 또 다시 되풀이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때문이다.



하루를 사이에 두고또 다시 달려간 팽목항엔 길게 늘어선 승용차도 없고 배를 타려는 사람들도 한산해서 이틀 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안개로 또 다시 뱃길이 막힐까봐 섬으로 떠나길 포기했거나 섬에 발이 묶여있던 이들도 부랴부랴 빠져 나와버려 지금쯤 섬도 한산할 거란다.


이기적인 생각이겠지만 조용하고 한가로운 섬이라면 단 하룻밤의 일정이라 할지라도 번잡함이 싫은 내겐 차라리 잘 된 일이 아닌가 싶다.


한 선비가 지나는 길에 해변에 피어난 매화의 아름다움에 취해 '관매도'라 부르게 되었다는이 섬은 팽목항에서 출발하여 이곳저곳 들렀다 오느라 1시간 30여분의 시간이 걸렸으나 나의 경우에 있어선 꼬박 이틀이나 걸린 셈이다.


선착장에서 표지석을 두고 왼쪽편에 있는 관매리 1구(관매마을)로 향하는 길에 얼추 30명도 채 되지않은 사람들이 듬성듬성 물놀이를 하고 있는 광활한 해수욕장이 무척이나 여유롭다.

누군가가 그랬다.

완만한 경사의 깨끗한 물과 고운모래, 울창한 송림과 변산의 채석강 못잖은 아름다운 해식벽과 갖가지 동굴 등 관매도해수욕장은 갖출 건 다 갖춘 천혜의 해수욕장이라고......


해수욕장 너머론 200년도 넘었다는 곰솔이 3만평이나 되는 울창한 숲을 이뤄 초승달 모양의 백사장을 포근하게 안고 있는 풍경은 더없이 편안해서 좋다.

몇 해 전 청산도에 갔을 때 그곳 지리해수욕장의 곰솔의 우왁스런 몸집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 곰솔은 몸집이 더 크고 솔밭은 넓어서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민박집 아짐의 "옛날 어르신들께서 소나무 대신 동백을 심었더라면 훨씬 더 좋지 않았겠냐"는 푸념은 별개의 문제였다.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섬 안으로 접어드니 아담한 들을 앞에 둔 마을의 돌담이 정겹다.

솔숲을 따라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300여m쯤 가니 학교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300년도 넘었다는 후박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푯말엔 천연기념물 212호로써 1년에 한 번씩 섬 주민들이 제사를 지낸다는설명이다.

섬의 크기에 비해 꽤 몸집이 큰 초등학교는 현재 학생 2명에 선생님이 2명이란다.


솔숲을 벗어 나오니 농사를 짓지 않아 잡초만 무성해진 들녘엔 소나무 몇 그루가 무리지어 서 있을 뿐 가끔씩 지나가는 바람이 흔적을 남기며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저녁에 민박집 주인아짐으로부터 "이 섬 주민들 대부분이 60이상 되는 노인들이고 바다에서 톳과 미역으로 얻은 소득이 들에서 얻은 소득보다 더 낫다"는 설명듣고 난 뒤에서야 논과 밭이 묵혀있는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들녘을 지나 언덕베기에 오르니 항도와 신의도라 불리는 작은 무인도가 쪽빛바다에 몸을 담근 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과 어우러진 광경이 멋스럽다.

방향으로 짐작컨데 이곳이 섬의 동쪽인 듯 싶어 내일 아침엔 이곳에서 일출을 맞이해도 괜찮을 것같다.



언덕베기에서 다시 배를 내렸던 선착장으로 되돌아 와 이번엔 표지석의 오른쪽에 있는 관매리 2구(관호마을)로 향했다.

관호마을의 끄트머리쯤 바닷가 절벽엔 노란 원추리와 선홍빛 참나리가 바람에 흐느적거리며 유혹하길레 서둘러 사진 몇 장을 담았으나 집에 돌아와 사진으로 보니 현장에서의 정취같은 건 느껴지지가 않는다.


관호마을 한 가운데를 지나 언덕베기에 오르니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전망대가 서 있다.

전망대에서 잠시 바다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을 때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들 중 어떤 이가 "이곳에선 맑을 때면 제주도가 보인다" 며 우리가 왔던 마을쪽으로 내려간다.

전망대 바로 옆에 서 있는 이정표엔 "하늘다리 1.2km"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고 이정표가 가르키는 산쪽으로 오솔길도 선명하게 보인다.

아마도그 사람들은 하늘다리를 다녀오는 길인 모양이다.

밥은 언제 먹을 거냐며 짜증을 내는 아내의 역성에 벌써 시계를 보니 한 시가 넘었다.

해질녘에 다시 오기로 하고 관매마을로 돌아와 민박집 방 한 칸을 얻었다.

점심을 먹은 뒤 그늘에서 낮잠이나 한 숨 자볼까 하고 누웠으나 쉽사리 잠이 와 줄 것 같지가 않아 섬이나 구경할 셈으로 혼자서 밖으로 나왔다.

마을에서 엎드리면 코닿을 곳에 있는 바닷가 솔숲엔 보듬으면 한 아름이 훨씬 더 되는 잘 자란 소나무마다 세월이 지나가며 남겨놓은 깊게 팬 등걸이 마치 거북등을 보는 것 같다.


그 중 덩치가 더 큰 나무를 카메라에 담으려던 사이에 손등과 어깨와 다리가 자꾸 가렵다.

무심결에 가려운 곳을 보니 우왁스럽게 크고 시커먼 모기가 옷을 뚫고 주둥이를 꽂은 채 피를 빨아대고 있다.

남들보다 유별나게 모기에 잘 물리고 가려움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껍질이 벋겨질만큼 긁지 않으면 못견디는 사람이 사계 중 이런 여름이 싫을 수밖에 없다.

솔숲 초입에 있는 가계의 주인인듯한 한 청년이 온몸을 박박 긁어대는 나를 보며 "이곳 모기는 예삿모기가 아니라 전투모기"라며 웃는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잠에 취해있던 일행들을 깨워 다시 밖으로 나온 건 해가 지기 전에 섬 구경을 다 해놓고 싶어서다.

비록 작고 아담한 섬이라지만 무더운 여름날 걸어서 다닌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라서 승용차를 가져오길 잘 했다.


숙소를 정하기 전에 왔었던 관호마을 언덕베기 전망대에 차를 세워놓고서 하늘다리 쪽으로 가다보니 바닷가에 동그라니 놓여있는 꽁돌이라 불리는 큼지막한 바위가 신비롭기만 하다.

지금껏 여러 섬엘 가봤지만 구경거리가 될만한 바위나 동굴엔 어김없이 옥황상제, 신선, 선녀, 할매의 이야깃거리가 얽혀 있었듯이 이곳 꽁돌과 꽁돌 바로 옆에 신비스럽게 보이는 바위무덤도 마찬가지다.


바다와 섬의 경계선엔 파도에 떠 밀려온 온갖 어구를 비롯하여 잡다한 쓰레기가 자꾸만 눈에 거슬린다.

저녁에 민박집 아짐한테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더니 하시는 말씀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고 바람부는 방향에 따라 오늘은 이 섬 내일은 저 섬"이란다.

물에 뜬 게 이정도이니 물속에 가라앉은 것들은 또 얼마나 될까?


꽁돌을 지나 산자락을 몇 번 오르내리는 동안 바람이닿지 않는 곳에선 어김없이 비지땀이 흥건히 흐른다.

1.2km의 거리가 유난히도 멀다고 느낄 무렵 눈앞에 다리 하나가 불쑥 나타나고 이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섬을 큰 칼로 내리친 듯 두 쪽으로 예리하게 갈라진 까마득한 절벽의 좁은 틈새로 쪽빛 바닷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천혜의 비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나중에 민박집 주인아짐한테 들은 이야기로선 옛날엔 소나무 다리가 놓여져 있어서 어지간한 사람은 건너갈 수도 없었다고 했다.

허나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해 튼튼한 다리를 놓고 그 한 가운데엔 친절하게도 투명한 유리를 통해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배려를 해 놓았으니 여행객 입장에선 더없이 좋을 일이 아닌가 싶다.

다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찔한 절벽에 노랗게 피어난 원추리가 곡예를 자랑이라도 하는 듯한 광경에 왠만한 것엔 감탄을 할 줄 모르는 아내가 "우와"하는 탄성을 지른다.

다리에 감히 "하늘"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놓을만 하다는 생각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고향인 이 섬의 하늘다리를 설명하면서 "이 다리위에서 돌맹이를 던지니 14초 후에 풍덩하고 빠지더라"라고 써 놓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돌멩이를 던져보지는 않았지만 눈대중으로 봐선그 정도까지는 아닐 것 같다.

다만, 절벽 어디쯤엔 수 십만 원이나 하는 약초가 자란다는 설명에 솔킷하였으나 막상 이곳에 서니 아찔한 절벽을 내려가보고 싶다는 생각같은 건 조금도 생겨나지 않는다.

해질녘이 가까워 오는 시간이나 태양은 구름과 숨바꼭질을 끊임없이 해대는 터라 썩 괜찮은 일몰풍경 하나쯤 담아보고 싶은 마음을 접고서 차가 있는 곳까지 되돌아 왔다.

숙소로 돌아갈까 하다말고 해가 지기까지는 아직 반 시간도 더 남은 터라 선녀가 내려와 방아를 찧었다는 방아섬과 아낙들에게 관심이 적잖다는 남근석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서 하늘다리가 있는 섬의 서쪽에서 방아섬이 있는 섬의 동쪽 끄트머리 쪽으로 서둘러 이동해 다시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느린 걸음의 일행들을 뒤로하고 한참을 걷다 산모퉁이를 돌다보니 문득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건너편에 있는 방아섬과 그 위에 불쑥 솟아오른 남근석이

해질녘 어스름한 빛에 희미하게 보인다.

만약 걸어서 방아섬엘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혼자서 차에 남아 있겠다는 아내에게 귀신이야기까지 해대며 따라오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숙소에 돌아와 저녁을 먹은 흔적들을 정리하고 있을무렵 민박집 아짐이 교회에 다녀온다며 우리가 있는 편상으로 와서 앉는다.

이 때부터 시작된 아짐의이야기는 섬에서 태어나 섬사람으로 살아왔던 이야기에서 부터 미역과톳 양식에서 부터 하늘다리 이야기까지 친구 내외가 잠 자리에 든 한참 뒤까지 계속되었다.

전투모기에 시달릴 일을 생각해 무척이나 두려웠던 밤도 방안에 미리 들어와 웅크린 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녀석들을 세 마리나 소탕하고 나서야 조금 안심이 된다.

동이 틀 때까지 이래저래 잠을 설치긴 했으나 짧은 여름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는 것 쯤은 일도 아니다.

어차피 집을 떠나선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라며 잠에 관한 집착을 미리접으니 차리리 마음편할 일이다.


친구와 아침 출사를 나갔다 일곱 시 반쯤이 되어 돌아오니 주인집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비록 짧은 인연이지만 이별의 인사는 해야할 것 같으나 뱃시간이 임박한터라 서둘러 나왔는데 서운타 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선착장으로 나오니 어제까지만 해도 옅은 해무에 휩싸인 섬이 씻은 듯 말끔하여 상큼하고 회색빛 구름들로 가득했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이 시리도록 파랗다.

문득 어제가 오늘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집착에서 깨어나라는 듯 멀리서 뱃고동소리가 들려온다.

쪽빛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모퉁이를 돌아서 오는 배가 보인다.

저 배를 타고 안 타고는 내게 달려있지만 내가 타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배는 다시 떠날 것이다.


만약 내가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해도 세상은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아침엔 동녘에서 어김없이 해가 치솟고 저녁이면 서쪽으로 해가 저물 것이다.

내가 없다해도 조금도 아쉬워해 줄 것 같지 않은 세상이 갑자기 두려워지고 홀로 남은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일행들 보다 앞서 배에 오르는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다.

떠나올때 보다 하룻만에 훨씬 더 초라해진 내 모습이 파란하늘에 참으로 더 많이 부끄럽다.

2010, 8, 9.

'글 - 허공에 쓴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3, 적반하장(賊反何杖)  (0) 2010.10.12
222, 술, 그리고 변명  (3) 2010.10.10
24, 느리게 걷는 지리산 화대종주(2010년)  (12) 2010.06.26
221, 다시 길을 나서는  (10) 2010.06.22
220, 감 장사  (11) 2009.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