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드라마 유감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9. 2. 27. 04:59

옆지기는 평소에 TV의 드라마에 관해선

사극, 애정물, 기타 등등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인 반면

나는 주로 넌픽션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거나

드라마를 보는 경우엔극의 전개가 복잡하지 않고

보면서가볍게 웃을 수 있는 것 말고는 거의 보지 않는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1대의 TV를 놓고 둘이서 함께 보는 경우는 거의 드물며

한 집에 두 사람만 살면서

거실과 안방의 TV를 각각 차지하고볼 때가 허다합니다.

이런 것이 오손도손하며 사는보기 좋은 모습은 결코 아니지만

체널 선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실랑이를 벌이지않아도 될 일이라서

차라리 마음편하고 좋을 일입니다.

우리는조그마한 겨자상에 밥을 차려

안방으로 가져 와밥을 먹은지가 꽤 오래된 일이라

주방에 놓여있는식탁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오늘은 일찍부터 서두르지않아도 괜찮은 날이라서

다른 날보다 느즈막히 아침밥을 먹는데

마침 드라마를 하는 시간이라서

옆지기가 원하는 체널에 맞춰놓고있었습니다.

한참 밥을 먹고 있으려니

TV에서 부인인 듯한 사람이 앞에있는 남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광경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뺨을 때리고 맞을만한 상황이이 전에 전개되었겠지만

드라마를 안 봐 왔으니 그 내용은 알 수 없는 일이고,

요즘 드라마의 대부분이 아내가 남편을 업신여기고시부모를 학대하거나

불륜과가정파괴는 물론이고온갖 악랄한 짓을드라마의 소제로 삼고

절대로 이해못할 친족간의 애정행각까지도버젓이 만들어 내는등

인간의막다른 골목까지 다 보여주지 못해서 애를 태우는

참으로 혐오스럽기만 한장면들 뿐이라고 한다면

드라마에 대한 나의 편협하거나부정적인고정관념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조금 오래 된 일이라서

어디서 누가 조사한 것인지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으나

"사형제도를 부활한다면 누구를 제일 먼저 사형대에 세워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사회 흉악범들 보다도 TV드라마 작가를 제1순위로 꼽았다는 말을 듣고선

내심 동조를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들은

그 내용에 따라서 이 세상을따뜻하고 밝게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온갖 추악한일들이난무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어서

현재의사회 현상에 일부나마 책임을 져야 한다는뜻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온갖 추한모습들을 드라마를 통해 보고 사는 동안

막상 주변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질 땐 예삿일처럼 여기게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한번쯤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입니다.

나는 어쩌다드라마를 보면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온몸으로 발악을 해대는 배우들을 볼 때면

드라마의 내용을 생각하기 보다는

한 인간의 추한 모습만 보는 것 같아서

나는 서둘러 체널을 돌려버리곤 합니다.

집안에선 항상 웃음소리가 있어야 좋을 일인데도

배우들의 울부짓는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집안에 울려퍼지는 게 싫어서

옆지기가 드라마를 볼 땐 볼륨을 낮추라 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이 아름다울 수록 좋을 일이나

있어선 안 될 온갖 추한 장면들을 보고 듣는 중에

일상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해도예삿일처렴 여기게 될까두려워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낫다는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그렇게 생각한다는게 아니라

내 생각만 그렇다는 것이라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지기에게

"저런 광경을 보면서 느껴지는 건 없어?"라며

경계하며 조심스레 묻습니다.

언제 무슨 일로

내 따귀에 번갯불이 튀길지는 아무도모르니까요.

2009,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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