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인연의 끝에 서서 탄식하는 이에게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8. 12. 1. 13:02

세상의 모든 고뇌를 혼자 짊어진 것 마냥
심난스럽기만 했던 청년시절 한 때를
고향에서 부모님의 농삿일을 거들며 보내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우연히 알게 된 이웃 동네의 여자 아이를 향해 싹트기 시작한 연민은
어둠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내게 잠시나마 빛이 되어 주기도 했으나

그 것도 잠시일 뿐,
그 연민이 커져 갈 수록 자꾸 멀어져만 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착찹한 심정으로 바라봐야만 했었습니다.

나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인연들 중에
잠시나마 내 안에 애틋함으로 머물다 간 사람이라서 그랬는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도
언뜻언뜻 떠오르곤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훌쩍 지난 3년 전 쯤 어느날 우연히
그녀와 한 동네에 살았던 친구녀석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고
몇 날을 망설이던 끝에 전화통화를 하던 날,
두 아이의 아버지로써 그리고 또 다른 두 아이의 엄마로써
지나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아직 남아있는 옛 기억들을 되새김질 하며 너털웃음도 웃었습니다.

나 혼자만의 일이라 조금 심난스럽긴 했어도
서로의 마음에 얹혀진 짐이 없으니
세월이 흐르는 동안 흐릿해져버린기억들이 차라리 아쉽기만 할 일이었습니다.

과거 월남전쟁 때
애인을 월남으로 떠나보낸 아가씨와 우편배달부(지금은 집배원)와 사이에 있었다는 일화가
우스개소리일거라 짐작은 하면서도
"그래 그랬을 수도 있어"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전쟁터로 떠난 애인은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전해오고
그 편지를 전해주는 우체부와 편지를 기다리는 아가씨 사이에
한달, 두달, 그리고 일년....
파병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보니
그토록 보고싶어 했던 여인은 우체부와 잘 살고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죽을만큼 누구를 사랑하다가
못견딜만큼 아픈 이별의 상처를 받아 본일은 없었다 할 지라도
부푼 가슴을 안고 돌아 온 이의 심사가 어떠했으리라는 것 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떠나가버린 사람이라면
답답한속마음내 보이려다 추한 것까지 들춰보이는 것 보다는
안으로 곱씹으며 가는 뒷모습이라도 바라보는 게

차라리 더 나을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한다는 건 좋을 일이지만
누구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건
그만큼 고통이 뒤따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없으면 죽을 것만 같았던 사랑도,
영원토록 함께 하리라 믿었던 운명같은 인연도
내일이면 또 어떤 모습일런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거나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말이
다 맞는 말이 아니길 간절히 바래지만..........



2008,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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