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 부터 대충 3년 몇 개월 전 쯤
그날도 어제처럼 해가 서산으로 기운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던 것 같다.
일몰 후 30분쯤면
서쪽하늘이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스럽게황혼빛으로물들곤 해서
사진을 하는 이들은"매직아워(Magic Hour)"라며 그 시간을반기지만
그와 반면 지상에선 길거리의 조명등도 켜지지 않을 때라서
하루 중 시각적으로 가장 분별력이 떨어질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던 아내가
갑자기 도로를 가로질러 돌진해 오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들이 받은 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횡단보도가 30여m 전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돌아가기 싫어서 건너 온 게 잘 못이라는 걸
늙은이 본인 스스로도 인정하며 미안해 하는 일이었지만,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규정에 낚이어
"가해자"라는 이름으로 덤터기를 써야만 했으니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비록 보험회사에 일임한 일이라서 내가 관여 할 바 아니었으나
소위 아까징끼만 발라도 괜찮을 경미한 타박상임에도
한술 더 떠서 그 늙은이의 아들은
오래 전부터 앓아왔다는 어미의 무릅관절 수술까지 하게 하는 효도를 하는 걸 보며,
지극히 상식적인 일을 비상식적으로 뒤엎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 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
내가 얻은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그날 이후 3년 간
거의 두 배쯤 할증되는 보험료를 부담해야 했고
재계약을 할 때마다 되새김질 하기 싫은 기억들을
소태를 씹듯 되씹어야만 했었다.
어제 해질녘,
실로 오랜만에
일찌감치 자릴 잡고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워있으려니
시장에 다녀오겠다던 아내로 부터
아파트 아래로 내려와 보라는 전화가 왔다.
30여년 가깝게 몸을 맞대고 살았으니
목소리만 들어도 좋지않은 일이란 걸 직감하며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서 보니
주차장에 주차해 있던 차가 갑자기 뒤로 후진을 하면서
그 뒤를 통과하고 있던 내 차의 뒷문짝을 들이받은 사고였다.
만약 앞문짝부터 긁혀 있었다면
후진하고 있던 차를 미쳐 못 봤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도 가능할 일이었으나
뒷문짝이 긁힌 걸 보면 후진하려던 차가 뒤를 확인하지 않아서 일어난 사고라는 걸
운전을 안 해본 사람이 보더래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각자의 보험회사로 연락을 하고
양측의 보험회사 관련자들이 와서 사고 상황을 확인하더니
나를 또 한번 어처구니 없게 만들고 만다.
"옛날엔 안 그랬지만 요즘엔 법이 바뀌어 이동중에 일어난 사고는
쌍방과실로 인정하어 사고를 낸 쪽에게만 100% 책임을 묻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옛날엔 안 그랬지만"이라는 말도
상대방 보험회사 관련자가 "우리쪽에 과실이 더 많다"라는 말도
내겐 참으로 어이없을 뿐이었다.
더구나 화가 나는 건
상대방이 보험회사에 연락했다는 것 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사과 한 마디 안 하고 유유히 사라져 갔다는 사실이다.
세상일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지만
생각하면 할 수록 뒤집어지는 속을
어떻게 다독거려야 좋을지 모르겠다.
"일몰 후 30분 쯤이면
들에서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시간에 시골길을 운전할 땐 항상 조심하라"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일렀건만
아내는 그 시간에 시골이 아닌 도심에서
불가항력적이건피해자이건상관없이 두번의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렇잖아도 평소에
차에 수북히 먼지가 쌓여 있어도 털어낼 생각은 커녕
키를 꼽아 돌려서 시동만 걸리면 끌고 다니다가
연료가 떨어지면 세워두곤 해서 쌓인 불만이 적잖았는데
이번 기회에 특단의 조치를 취할수밖에 없다.
"사람 안 다쳤으면 그것으로 다행스러울 일"이라고할런지는 모르겠으나
실수란 한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면두 번이 세 번이 되고 또네 번이는 건
불보듯 뻔할 일이다.
그 때마다속이 뒤집어지고 문드러지느니
운전대를 그만 잡게 하는 것만이
서로에게 좋을 유일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008,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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