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들 중에
말썽만 부리고 득이 되지 않는 놈을 꼽으라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까치란 놈을 들먹이곤 합니다.
아이들은 까치 까치 설날을 노래하고
어른들은 이른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설을 믿으며
녀석들의 겨우살이를 위해 빨갛게 익어 먹음직스러운 홍시 몇 개 쯤은
까치밥이라 하여 기꺼이 감나무 가지에 남겨두곤 했었습니다.
만약에 녀석들이 지금처럼 쓰레기통을 뒤지며 봉지를 발기발기 찢어 대거나
잘 익은 과일만골라 쪼아대는 미운짓을해댔다면
아무리 옛 시절의 사람들이 너그러웠다 할지라도
까치에게 그런 배려를 해줬을리가 없습니다.
진달래꽃 필 무렵 산속을 걸을 때면
어김없이 산비둘기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구구구구, 구구구구,......
사람들은 그 소리를 구구구구가 아닌 꾸르륵 꾸르륵이라고들 하지만
구구구구든 꾸루륵이든 내겐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내 청년시절에 잠시나마 나와 함께 살며
솜털박이 산비둘기 새끼를 곧잘 잡아오던 어린 녀석한테서
" 구구구구 하는소리는
산비둘기 암컷이짝짓기 위해 숫컷을 부르는 소리"라고 들은 이후부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울음소리'가 아닌
봄이면 유난히정겹게 다가오곤 했던 '노랫소리'이곤 했습니다.
지난해 봄날세상을 먼저 떠나버린친구녀석이
지금으로 부터 4년 전 어느 날 나에게
"날이면 날마다 아스팔트 길을 걷고 콘크리트 벽 속에 갇혀만 사느니
가끔씩은 흙이나 밟고 살자"고 해서
인근에 조그마한 밭떼기를 함께 사 놓은 이후 부터
그 밭을 아내와 둘이서 일구다 보니적잖은신경이 쓰이곤 했습니다.
청년시절 잠시나마 지어 본 농삿일을 통해
이 일이 얼마나 고된 노동이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라서 그 때보다는 고단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와 지레짐작이
녀석의 잦은 병앓이가 시작되면서 부터 희망사항으로 바뀌게 되고
봄이 오면 빈 밭으로 놔 두기엔 내키질 않아서
마지못해 씨를 뿌리곤 했었습니다.
해마다 봄이오면
잡초가 나지 못하도록 이랑마다 비닐을 덮고
몇 날을 두고 씨를 뿌리다보면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실감하곤 합니다.
그러나 정작 심난스러운 건 씨를 뿌린 이후부터라는 사실입니다.
이랑에 씌어진 비닐의 구멍마다 씨를 넣고 나면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뒤를 따라 오며 주어먹는 놈들이
바로 산비둘기입니다.
궁리끝에 녀석들이 날아들지 못하도록
허수아비를 세워놓거나 반짝거리는 은박지 줄도 쳐 봤지만
다음 날 아침에 밭에 가 보면 이런 나를 조롱이라도 하듯
비닐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참깨씨를샅샅이 주어 먹으며
사람이 가까이 갈 때까지 도망가지도 않은 채 버티는 걸 보고 있노라면
산길을 걸을 때 그 좋던 느낌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입니다.
그나마먹히지 않은 씨앗들이 어렵사리 싹을 틔우고
한 여름동안 잡초와 씨름을 하는 사이에
어렵싸리 꽃을 피워 열매를 맺지만
씨앗이 충실하지 못하다 보니 풍작은 커녕 보잘 것 없는 농사는
불보듯 뻔할 일입니다.
더구나 열매가 익어 갈 무렵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녀석들이 몰려 와
부실하게 달려있는 열매를 톡톡 쪼아대는꼴을 보는 순간
돌맹이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옹졸하기 그지없는내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산길을 걸을 때 들려오던 노랫소리에
정겹기만 했던녀석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돌팔매질을 해대는 건
예전엔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라서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까치가 왜
나무가 아닌 전봇대에 집을 짓기 시작하며 사람들 눈엣가시가 되었는지,
산에서 살던 산비둘기가 왜
들녘의 곡식으로 배를 채우려는 짓을 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이 사람에게 있든 없든지 간에
올 가을이 지나면 이 녀석들을 다시는 그 땅에서 볼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은 벌써 시원섭섭하기 그지 없습니다.
통보받은 내용대로라면
택지 개발 공사를 시작하게 되는 올 가을 이후부턴
그 땅에 농사를 지을 수 없다니까요.
2008,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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