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광이 아름다워 신선들이 노닐다 간다는 섬 선유도(仙遊島),
섬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끌리곤 해서 꼭 한번 가 보겠다고 벼른지도 몇 년 째,
그리 바쁘게 사는 사람도 아니건만
어쩌다 보니 마음을 쫓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철을 맞아 산으로 들로 떠날 때
종주를 한답시고 혼자서만산엘 다녀온 게걸리고
산행을 떠날 때 아내의 수고에 대한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 지궁리하던차에
문득 마음에 두고 있던 이 섬이 생각나
지리산 종주를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즉흥적인 제안을 했다.
"신선이 노니는 곳이라면 선녀도 있을테니
그곳에 가서 선녀와 하루쯤 어울려 놀다 오는 게 어떻겠냐?"고.......
- 선유도로 가는 배 위에서....저기 떠 있는 구름 어디엔가 신선이 있을 수도..... -
동료들 역시 올 여름에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지 못했던 터인데다
아직 가 본 적이 없는 선유도 유람에 대해싫지 않은 표정들이라서
이야기를 꺼낸 김에함께 다녀오기로 결단을 내렸었다.
- 사진 아래의 왼편에 보이는 암봉이 선유도의 망주봉 -
그러나 며칠동안 내내 땡볕만 쏟아 내리던 하늘에
출발하려던 전날 부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끝내 비를 퍼붓기 시작하며 바람잡이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다.
출발을 앞두고 하늘에 간간이 별도 보이길레
다행이다 싶어 밖으로 나섰으나
아파트 담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다시 비가 쏟아진다.
비록 내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동료들을 끌여들였다지만
함께 좋자고 하는 일을 두고 너무 가혹하게 심술을 부리는 하늘을 향해
게슴츠레 실눈을 치켜 뜨며
다시 집으로 돌아 가 우산을 있는대로 챙겨 오는 내 꼴이 안쓰럽기만 하다.
쏟아지는 비가 마치 갈 길을 막아서는 느낌이었지만
기왕 마음을 먹은 김에 계획했던대로 출발하여
군산의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니
첫 배가 출발할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았다.
- 군산 여객선터미널 -
이곳까지 오는 동안
혹시궂은 날씨라서배가 뜨지 않을까봐걱정을 했으나
터미널 분위기로 봐선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을 듯 싶어
대합실 한켠에 자리한 간이 식당에서
김밥과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며 배가 떠날 시간을 기다렸다.
휴가철의 막바지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궂은 날씨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배 안에 여행객들로 북적이지 않아서 좋다.
- 배 이름이 "옥도 훼리호".....? -
설마 신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선유도가 가까워 올 수록 빗방울이 가늘어지고
먹구름의 갈라진 틈 사이로 바닷물보다 더 파란 하늘이 보이더니
듬성듬성 나타났다 사라지는 하얀 뭉게구름이
바다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과 어울려 아름답기 그지없다.
고향친구가 사흘동안 선유도에 파견근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는 있었으나
선착장까지 마중나와 우리 일행을 먼저 발견하고서 손을 흔들고 있는 친구를 보는 순간
반갑고 고맙기 이를 데 없다.
- 선유도 선착장과 내 친구 "군산 박"의 마중 -
낮선 곳에 갔을 때 편안하게 쉴 곳을 마련해 주고
그곳의 길을 안내해 주는 이가 있다면
목마른 산길에서 물을 나눠주는 이 만큼이나 고마운 일이다.
해수욕장이 바라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자리잡은 친구의 임시 근무처는
우리 일행들이 더운 땀을 식히고 갈증을 삭히며 편안하게 쉴 수 곳임에 틀림없으나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을 끼치지나 않을까 하여 내심 조심스럽기도 하다.
- 선유도 해수욕장과 망주봉 -
다행스럽게도 친구가 사흘동안 하는 일이
여행객들의 불편을 덜어주는 일과 관련이 있었기에
조금은 편하게 여장을 풀어도 괜찮을 것 같다.
선유도는 본래 가운데 섬인 선유2구를 두고 선유 3구와 선유1구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섬이 되었다는데
행정구역 상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에 속하는 섬으로써
지금은 인근에 있는 무녀도와 장자도와 대장도까지
자전거나 오토바이 또는 전기자동차 등으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연도교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 선유 1구 방향으로 자전거 하이킹-
친구로 부터 "부부끼리 짝을 지어
자전거로 섬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는권유에 따라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온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는 아내는
패달을 밟아 대는 것인지 아니면
패달에 얹혀진 발이 내가 휘젖는 힘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조금이라도 경사진 길에선 힘이 들어 죽을 지경인데다
비가 갠 뒤의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 낮이라
온 몸이 금새 땀으로 후줄근히 젖고 말았다.
- 카메라 앞이라서 힘들어도 웃어야......^_^ --
더구나 자전거가 낡아서 체인이 벗겨지거나 기어가 헛도는 통에
끝내 일행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선유1구의 중간에서 되돌아와
자전거를 대여했던 주인에게 투덜대며 반납하고 말았다.
만약 눈에 보이는 풍경이 기대했던 만큼 좋았더라면
그런 불편 쯤은 감수하고 구경삼아 천천히 돌아봄직도 하련만
선유1구 방향은 선유도 가운데 쯤에 우뚝솟은 망주봉 말고는
한 낮의 풍경으론 어느 섬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오늘 점심만큼은 기대해도 좋다고 큰소릴 쳐 놨기에
횟집 주인이 권하는 광어회로 술안주를 하고 매운탕으로 점심을 하려 했으나
광어보다 싼 우럭과 놀래미로 하는게 좋겠다는 동료의 뜻에
조금이라도 이의가 있을 순 없다.
--- 우럭과 놀래미 회 ---
나는 혀가 무딘 탓에
자연산이 양식보다 더 맛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양식 회를 먹을 때도 일상에 있어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니라서
항생제에 대한신경은 크게 쓰지 않고
마냥 먹어댈 뿐이다.
또한 자연산이라고 해도 진짜 자연산인지 양식인지 구분할 줄도 모르고
자연산이라 먹으면서도 혹시 양식을 먹으며 속고 있지나 않은지
단 한번이라도 의심을 하지 않고 먹어본 적이 없다.
이것은 내가 평소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서가아니라
서로가 서로를밥먹듯이 속이며 속고 사는걸
너무 자주 봐 온탓이다.
때문에 나는 항상 횟집에 가면
자연산이라 써 놓고 장사를 하는 횟집 보다는
차라리 양식이라고 말하는 집에 가서 먹길 좋아한다.
양식을 자연산이라고 속여 파는 집은 있어도
자연산을 양식이라고 하며 장사하는 집은 없을테니까........
그러나 선유도는 섬이라서 그런지
"자연산"이라고 써붙여 놓지 않은 횟집이 단 한군데도 없었다.
섬 사람들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양식을 취급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서겠지만
그와 반면에 육지에 비해서 결코 싸지않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에 있어선
어떻게 이해를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 선유해수욕장 언덕베기에서 바라본 장자도쪽 풍경 -
파견근무를 하는 친구를 통해서 안 사실이지만
내년 쯤이면 새만금방조제를 이용하여 승용차로 오갈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관광객들의 수는 늘어날지 몰라도
승용차에먹고 마실것들을싣고 오가기 때문에
주민들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어 걱정들이라고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더 큰 문제는
피서철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 수록관광객들의 수가 줄어드는현상인데
볼거리와 먹거리가 관광지의 활성화를결정짓는 중요 요소라고 볼 때
볼거리는 한정되어 있음에도
먹거리가 비싸서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건 아닌지
주민들 스스로 심사숙고해 봐야 할 일이 아닌가 싶어진다.
-장자도에서 바라본 풍경 -
그렇잖아도 선유도 관광계획을 세우기 이전부터 먼저 다녀 온 이들에게
"한번 갔다 오면 또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가격에 비해 썩 푸짐하지 않은 상차림을 보면서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심을 마치고 나서 아낙들이 내 친구의 근무처에서 쉬는 사이에
남정네 세 사람이 각자 한 대씩의 자전거를 타고
장자도와 대장도 쪽으로 향했다.
오전에 둘러봤던 선유 1구나
떠나올 시간을 1시간 쯤 남겨놓고 급하게 돌아봤던 무녀도보다
풍광이 훨씬 더 아름답고 볼 거리가 많아
한 낮임에도 자전거를 타고 구경다니는 사람들의 행열이 끊이지 않는 이유와
이 섬을 선유도(仙遊島)라고 이름붙힌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다.
- 장자도 해변에서 -
선유도와 장자도와 대장도와 무녀도를 자전거를 타고 돌면서
선유8경 중에 금빛 모래가 깔린 선유도 해수욕장의 명사십리와
무녀도의 3개 무인도 사이로 고깃배가 돌아오는 삼도귀범과
고군산군도의 12개 봉우리가 춤을 추는 것 같다는 무산12봉과
기러기가 내려앉은 듯한 형상의 모래톱인 평사낙안 등 4경은 본 셈이다.
- 선유도와 장자도를 연결한 연도교 -
큰비가 내리면 망주봉 암벽을 타고 예닐곱 가닥으로 쏟아져 장관이라는 망주폭포와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펼쳐지는 황홀한 일몰의 선유낙조와
신시도의 월영봉(199m)을 오색으로 물들이는 월영단풍과
장자도 밤바다의 고깃배 불빛을 일컫는 장자어화 등
나머지 4경은 아쉬움으로 남겨 놓음으로써
이곳에 다시 와야 할 구실은 만들어 진 셈이다.
- 선유도(왼쪽)와 무녀도(오른쪽)를 잇는 연도교 위에서 바라본 풍경 -
비록 신선과 선녀를 만나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 섬 어느곳엔가 그들이 내려와 머물렀음직한 느낌만이라도 담아 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써 족할 일이다.
자전거의 안장에 살갗이 씻겨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도 조금 불편스럽긴 해도
"한 여름 땡볕에 비지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섬을 돌아다녔던 일만큼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아내의 여행 소감만으로도
처음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뜻있는 여행이었기에 기분좋을 일이다.
- 무녀도를 돌아다닐 땐 내 친구가 아내를 테우고 다니면서 힘깨나 썻을 것이다. ㅋ -
둘이서 오붓한 여행도 좋을 일이지만
세상살이를 하는 동안엔 어차피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할 일이라서
가끔은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무리지어 다니며
조금은 요란스러운 여행을 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2008,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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