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00라고 그랬냐?“
“예,아버지께서 지어 주셨는데 아이들이이름을 갖고놀리곤 해요“
“속이 상하겠구나?”
“예! 처음엔 그랬는데 지금은하도 많이 듣다보니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그래, 좋은 이름인데 뭘! 한번 들으면 잊어먹지 않을 것 같다”
“예. 그렇지요?”
평소 나는 친구들 말고는 마음편히 이야기를 잘 못하며 지내왔으면서도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주절거리고 있는 내 자신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아마도 연탄불도 들지 않은 추운 방에 살게 해서 집주인 입장에서 아주 미안해하기도 하고, 또 혼자 자취하느라 고생이 많겠다며 걱정을해 줘서 오히려 내가 그분에게 고맙고 미안스러운 것 같아서 그랬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더라도그분은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루에 그냥 앉아 있으면서 반갑게 맞아주셨기에, 대문 밖에서그분이 마루에 앉아계시는지기웃거리는짓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떤 날엔혼자 앉아있기가 심심해서 그러시는지 방에 있는 나를마루로 불러내이런 저런 말을 내게 붙여오거나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했는데 숫기없는 시골내기서의대답은 거의 "예"와 "아니오" 중의 하나가 예사였음에도답답해하거나 재미없다는 표정은 한번도 짓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하루 이틀 자주 있다가 보니그분을 대할 때 두렵거나 무서운느낌은 사라져서 마루에 함께 앉아있는 일이차츰 자연스러워지고, 어떨 땐 그분이 부르지 않아도 무료할 때면 내가 스스로 밖으로 나와 말상대가 되어주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마루에 햇볕이걷히고해가 넘어갈무렵에야돌아가곤 하셨다.
나는 어느때부턴가 그분을누님이라 부르기 시작했고하루종일 있어도 말 붙일 사람이 없었던터에부끄럼 많고 재미없는 아이였지만 사람에게 말 몇 마디라도 건낼수 있다는 사실에위안을 삼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날도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돌아와 대문을 들어서는데 마루에 앉아있던 그 누나가 반가운 듯 웃으며 내게 말한다.
“방이 따뜻하면 방에만 처박혀 있을까봐 연탄불을 안 피우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방문을 여는 순간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느낌으로 알 수가 있었다.
방바닥이 따뜻한 것이 금방이라도 배를 깔고 엎드리고 싶었다. 내가 학교를 간 사이에 숯불을 지펴서 아궁이를 말린 다음 연탄불을 살려놓은 것이 틀림없다.곧 바로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보고 싶었지만 주인댁 누나한테 고맙다는 인사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마루로 나왔다.
“방이 따뜻해 졌는지 모르겠다.”
“누님께서 방에 불을 넣으셨어요?”
“그래, 아궁이가 아직도 채 마르지 않아서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쉽게 불이 붙더라.”
“고맙습니다. 방이 따뜻해서 좋던데요?”
“응, 그렇기도 하겠다, 하지만 나는 햇볕이 더 좋더라.”
“예......”
시골촌놈이 낯선 도시로 와서밥하는 일, 설거지하는 일, 청소하는 일, 빨래하는 일......홀로 자취생활을 하는 내가가엾고 안쓰러웠던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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