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여름날의 심사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6:59

여름날의 심사 (2002년 7월 27일)

태풍이 지나간 하늘엔
함께 휩쓸려가지 못하고 뒤쳐진 하얀 뭉게구름 조각들이
길을 잃어버린 듯 파란 하늘에서 허둥대고 있습니다.

아직 점심때가 멀었는데도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이 온도계 눈금을 35도까지 끓여 올려놨으니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오후의 무더위에 미리 심난스럽습니다.

이런 날엔 녹음이 우거진 계곡에서
시원한 물에 발 담근 채 수박 한 조각으로 갈증을 식히고
늘어지게 낮잠 한숨 자면 더 없이 좋을 일이나
묶여있는 몸이라 상상하는 걸로 족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사나흘 뒤부턴 닷새간의 휴가 기간이라서
사람들은 다들 휴가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합니다.
더운 날 밖에 나가면 고생이라는 평소의 생각에 그냥 집에 눌러앉아 지내고 싶지만
행여 부풀어오른 옆지기의 볼이 언제 터질까 겁도 나는 일이라
가까운 계곡에나 하루쯤 다녀오는 것으로 생색이라도 내려고 합니다.

지난 며칠은 개(犬)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여름감기로
심난스럽기 그지없는 날들이었습니다.
여름들어 식욕도 떨어지고 기력 또한 시원찮았으나
더위엔 의례 그러려니 하다 그 댓가를 톡톡히 치룬 후에야 비로소
건강에 관해서도 조금 더 겸손해야한다는 교훈 하나를 얻었으니
지혜롭지 못한 탓에 몸고생 시키며 세상살이를 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속담도 있듯
먹는 것이 삶의 기본이라 해도 과하지 않은 말입니다.
어떤 이처럼 "잘 먹고 잘 살자"라 가훈을걸어 놓고
먹는 것에서 부터 건강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잘 먹고 잘 소화를 시킬 때만 건강도 가능할 일이고 보면
그에 대한 중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옆지기는 먹거리를 정성껏 만들고
식솔들은 주는대로 잘 먹으며 살아 온 터에
먹는 것에 관해선 그리 많은 신경을 쓰지 않고 편하게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식욕도 예전과 달리 한결같지 않은 걸 보면
여름의 무더위 때문이 아니라 나이가 든 탓은 아닌지,
또 알게 모르게 건강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생각도 해 보며
이럴 땐 몸에 좋은 보약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도 있긴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에 감기 한번 앓고 나서
그 원인이 내가 아닌 다른 곳이 아닌지
또는 보약이라도 한 재 생각나서 그러는 것은 아닌지,
그것도 아니라면 피서를 가는 것이 귀찮아서
옹색한 변명거리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내 얄팍한 심사가 예리한 옆지기에게 통할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글 - 허공에 쓴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 내 친구녀석 첫번째 이야기(친구 부부)  (0) 2007.07.29
22, 비움과 채념  (0) 2007.07.29
20, 가랑비인지 이슬비인지  (0) 2007.07.29
19, 도시의 아침  (0) 2007.07.29
18, 비 개인 무등산에서  (0) 2007.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