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도시의 아침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6:55
( 2002년 06월 17일 월요일 )

가로등 불빛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그 시간에
옥녀봉을 향해 길을 나섰는데
솔밭을 들어 서기도 전에 벌써 날은 훤하게 밝아
무등산 능선에 아침빛이 붉게 물들어 옵니다.

동녘하늘에 짙은 구름이 끼어있지 않다면
꼬막재 위로 솟아오르는 아침해를 볼 수도 있으련만
보지못해 아쉽다는 생각 조금도 하지않고 부지런히 옥녀봉을 향해 오릅니다.

오랜만에 아침산행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남들보다 유난히 땀을 잘 흘러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오늘따라 바람 한 점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땀이 쉼없이 흘러내는 바람에
차라리 쓰지않는 것보다 더 불편해진 안경을 벗어서
주머니에 챙겨넣고 다시 오릅니다.

팔각정을 지나서 능선을 오르내려 꼭데기에 다달으니
나 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제각각 몸을 흔들며 체조를 하고 있습니다.
회색빛 옅은 안개가 낮게 드리워진 도시의 아침 풍경은
어느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데,
멀리 서창다리쪽으론 유난히 짙고 검은 안개가 덥혀서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풍암의 높고 낮은 아파트의 숲들과
축구경기장을 건너서 또 다른 아파트의 숲들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아침 안개속에 편안히 잠겨 있는 듯 싶습니다.

멀리 무등산 천왕봉을 향해서
두 팔을 맘껏 벌리고 가슴 터질듯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가
염주골을 향해 돌아서서
가슴 속 저 깊숙히 남아있는 마지막 공기의 한 방울까지 다 내 뿜습니다.

바람은 없지만 흥건히 적셔진 땀이 식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드는 때를 맞춰
하산을 하기 시작합니다.

경사진 곳에 이를 때면
예전에 있었던 난처했던 일도 생각나곤 해서
다리에 힘을 주고 내려오다가 보니
올라갈 때 보다 긴장의 끈이 조여매집니다.

하필이면 사람들과 비켜가는 순간에
토막난 나뭇가지를 밟아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던 일은
이 산에 올 때마다 내 기억속에서 새록새록 돋아날 것 같습니다.

산 입구를 벗어나 골목길로 접어들어
아직은 이른 시간인데도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순간
조급해진 마음에 집을 향해서 빠른 걸음을 재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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