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가랑비인지 이슬비인지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6:57
( 2002년 07월 09일 화요일 )

배낭을 꺼내놓고 그 속에 참외 두개, 오이 두개,
그리고 꼭 빼놔서는 안 될 물병을 넣습니다.
베란다에 나가서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 봤다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손을 뻗어서 폅니다.

손바닥에 떨어지는 가는 물방울은
그냥 집에 있으라는 이슬비인지,
아니면 가도 괜찮다는 가랑비인지 모르겠습니다.

산에 함께가자 했던 친구와 약속시간이 임박해 오기에
옷을 챙겨입고 모자를 쓰고서 다시 창문을 열어 봅니다.
지금 내리는 비는 집에 그냥 있으라는 이슬비입니다.

마무래도 오늘 일정을 취소해야 할 것만 같아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 놈은 아직도 이불속에 그냥 그대로 누워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세상을 마음 편하게 사는 친구가
오늘 아침에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보나 마나 그 친구는 새벽녘쯤에 한번쯤 밖을 내다 봤다가
일찌감치 오늘 계획을 취소 해 놓고서
마음편하게 꿀잠을 늘어지게 잤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켠에서 괘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초롬의 휴일에 비가 오는 것이 제일 싫지만
시원스레 쏟아지는 비가 아닌 이슬비나 가랑비는 더욱 싫습니다.

산행 말고는 특별히 할 일이야 없지만,
또, 산행을 포기하고 하루쯤 집에서 늘어지게 빈둥거려도 상관없지만,
일을 하며 보낸 하루와 빈둥거리며 의미없이 보내버린 하루는
같은 하루의 시간일지라도 비교 할 수 없을만큼 차이가 큽니다.

딸아이는 학교 기숙사로 짐을 옮겨간지 벌써 2주째,
아들놈은 아침도 제대로 먹지않고 허둥지둥 학교로 가고,
아내는 일찌감치 계획된 일로 외출을 하니
비가 오는 휴일은 홀로 남겨져 있어서 허전하고 또 외롭습니다.

기왕 내릴 비라면
이슬비도 가랑비도 아닌 비가 촉촉하게 하루종일 내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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