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봄빛 좋은 날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8. 13:27

2002, 4, 5. 봄빛 좋은 날.

아침의 맑은 햇살, 시원한 바람,
아기손만큼이나 귀엽고 앙증맞은 연록의 어린 잎,
늦게 피어나 아직 배짱좋게 버티고 있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
오늘 아침의 풍경입니다.

어제 퇴근길에서
석양빛의 조명을 받으며 무수히 지는 벚꽃잎들이
마치 함박눈이 내릴 때 추는 춤을 보는 것 같아서
화창한 봄날에 함박눈을 보는 것 처럼 신비스러웠던 일도 있었던지라,
휴일인데도 출근해서 제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내겐
오늘 하루가 별 재미없을 날이지만
봄날의 이런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만 따로 떼어 놓은다면
참으로 좋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봄날의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우니
가을의 뒤끝에서 보이는 뒷모습 또한 아름다울 수밖에 없으리란
지극히 단순한 생각이지만
그건 어쩌면 내 안에 잠재되어있던 하나의 바램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늘 이런 마음을 갖고 세상을 산다면
일상에서 불청객처럼 찾아오곤 하는 심난스러운 일들까지도
의연하게 맞이하고 후련히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베란다에서 겨울을 났던 철쭉이
봄날의 따스한 햇살을 받아 곱게 피어난지도 여러날이 지났지만
아직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라서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오늘같은 날 손님으로 오신다면
꽃향기 안주삼아 술 한잔 함께 마셔도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처럼 꽃 피고 새 잎이 돋아나는 봄인데도
한 낮이 되면 봄인지 여름인지
그리고 내 인생에 있어선 지금이
겨울인지 봄인지, 또는 여름인지 가을인지
확연히 구분지을 수 없기에 조금은 답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상에서 뭔가 갸우뚱거리며 또, 뭔가 기다리며,
가끔은 잊은 듯 살다가 보면
날도, 달도, 계절도 오고 가겠지만
내 인생에 있어 계절은 한번 가고 말 일이라
날을 보내고 계절을 보내는 마음은 늘 아쉬움뿐입니다.

아침의 맑은 햇살에 봄빛이 하도 좋아서
황홀한 봄빛만큼 아름다운 나의 삶에 대한 꿈에서 깨어나
다시 정신을 가다듬습니다.

아내가 끓이는 보리된장국 냄새가 구수한 아침.
밥 한그릇 말아막고 서둘러 출근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휴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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