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무의 생리적인 고찰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8. 11:52

(2002-01-30)

낮에 소사분제의 가지에 가위질을 하면서
나무의 생리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었습니다.

만약에 나무들의 단순하기만 한 생리를 미리 알면
감나무도 그렇고 소사나무도 그렇고 어떤 나무가 되었든
가위로 전정이라는 작업을 통하여
내가 의도하는대로 나무의 모양을 쉽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단순하기만 한 그 기본적인 생리를 모른다면
어떻게 가위질을 해야 하는 것인지
또는 가위질의 의미조차도 모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무 또한 주인을 잘 못 만난 탓에
볼품없는 나무가 되거나 결국엔 수명도 짧아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이런 나무들은 가지를 자르면
자르는 쪽으로 반발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톡 튀어나와서 볼품이 없는 가지가 있어
적당한 크기로 놔두고 잘라냈는데
그 이듬해 보니 잘라낸 가지보다 훨씬 더 큰 가지가
잘라낸 방향으로 훌쩍 자라있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 가지를 없애버리고 싶다면 흔적없이 잘라내야 하나
그렇지 않고 가지 밑둥이에 눈이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어김없이 잘라낸 것 보다 더 긴 가지를 뻗고야 맙니다.

그와는 반대로 자르지 않은 가지는 위로 또는 길게 자라지 않고
가지에 붙어 있는 눈마다 새로운 가지가 나와 힘을 분산시키며
가지가 무성하게 되니 길게 키우고 싶지않은 가지는 그냥 그대로 놔 두면 됩니다.

물론 모든 나무들이 다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이 겉으로 나타나는 나무들의 생리는
사람에 비해서 아주 단순하기만 합니다.

사람과 나무를 어떤 형태로든 비교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긴 하나
똑같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사실로만 단순비교를 해 보면
잘려진 방향으로 반발하는 단순한 생리의 나무처럼
사람도 단순하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나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일이 생각처럼 되지않을 때나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고민하고 심난스러울 일들이 훨씬 줄어들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잘 자라고 있던 가지가
어느날 갑자기 말라서 죽어가는 건
또 무슨 이유때문인지 몰라 고민스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르면 반발한다'라는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을 가지고
나무가 어쩌니 저쩌니 하며 나무에 관해서 제법 아는 듯 하다가
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가지가 죽어버리면 볼품이 없어져 버리는데.......

'글 - 허공에 쓴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8, 아버지의 존재  (0) 2007.07.28
7, 춘란 이야기  (0) 2007.07.28
5, 잔소리  (0) 2007.07.28
4, 딸과 술  (0) 2007.07.28
3, 별과 밤에 대한 단상  (0) 2007.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