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11월 18일 일요일)
지난 밤에 딸아이와 맥주 한 병을 나눠 마셨습니다.
잔으로 딱 세 잔이 나오길레 아내한테 한잔 하라고 했더니만
눈에 차지않아서 인지 마시지 않겠다고 합니다.
내가 두 잔, 딸 아이가 한 잔씩 사이좋게 오징어를 안주삼아 나눠 마셨는데,
안주가 좋지않아선지 속이 조금 더부룩 합니다.
딸 아이는 대학교 1학년이지만
아직은 여섯 달이나 더 있어야 미성년을 벗어나는데도
입학하자마자 친구들이랑 가끔 술을 한 잔씩 하고 들어오는 것 같아서
아빠앞에서 술냄새를 풍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만 보인다면
그냥 포기하고 모른 채 하고 있습니다만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싯점은 애비보다 한 3년은 더 빠릅니다.
애비는 마시면서 딸 아이한테 마시지 말라는 것도 불공평 할 일이어서
추한 모습만 보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상황에 따라 "적당히" 품위만 유지해 준다면
권하는 일이야 할 수는 없겠지만 눈을 감아주는 편이나
술이란 어차피 마시면 실수를 하게 만드는 속성이라서
안 마시길 바래는 마음이 더 큽니다.
어제는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임금을 받았다며
엄마랑 함께 마시라고 맥주 두 병을 사 왔다고 하기에
하는 짓이 기특(?)해서 한 잔을 따라 줬더니만
사양 한 번 하지않고 마시는 폼이 가관입니다.
아빠를 닮아서 술을 마신다는데야 할 말이 없습니다.
만에 하나 내가 술에 취해서 술주정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보나마나 그것마저 보고 따라서 할 것 같아서
어쩔수 없이 술이 많이 취해서 들어오는 날엔
죽은 듯이 자리에 누워 잠을 자곤 합니다.
그런 모습을 여태껏 지켜봐온 내 집사람은 속도 모르고
술버릇 하나는 괜찮다고 말을 합니다.
술기운이 있을 때면
나도 남들처럼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쏟아내고 싶을 때가 있지만
술을 마셨을 땐 어차피 술주정일 수밖에 없는 일이라
그냥 짙누를 뿐입니다.
애비 노릇, 남편 노릇, 가장노릇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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