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 날개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16. 10. 21. 06:39

말에서 떨어지더래도 고삐는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게 기본이라는 것을

요즘 들어서야 알았습니다.

떨어지는 순간에 땅에 팔을 짚게 되면 팔이 부러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말의 등잔에 올라타보기라도 했었더라면

6주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42일 전에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팔을 내밀지 않았을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날은 추석을 앞두고서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던 까닭에 

점심시간이 지날무렵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해마다 한 두 번씩은 어김없이 하는 일이지만 

예초기를 등에 메고 작업을 하다 보면

손가락을 쥐는 일이 불편할 정도로 힘이 듭니다.  

 

며칠 전부터 심난했던 까닭인지 평소보다 무척이나 힘이 드는 느낌이었으나

말끔하게 다듬어진 산소를 보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도 개운해집니다.

 

평소 같았으면 벌초만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고 돌아왔으련만

제수용품 출하에 바쁜 누님의 일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려야 겠다는 생각에

과수원으로 달려 가 감을 따기 시작합니다.

 

9월의 햇살은 무척이나 따가우나 노랗게 익은 감을 따는 일이

벌초작업에 비해선 놀면서 하는 일과 다름이 없습니다.

 

수확할 일을 고려해서 감나무의 키를 가능한 낮췄다곤 하지만

내 큰 키로도 닿지 않은 게 많아 이럴 땐 사다리를 써야만 합니다.

 

가을이면 틈틈히 누님네 감따는 일손을 도와왔던지라

그날도 익숙한 듯 사다리 위에 올라서서 감을 따고 있었습니다. 

 

사다리 작업을 하다 보면 올라가고 내려오는 일을 한 번이라도 덜하고 싶어서

손이 닿는 최대한의 먼 곳까지 손을 뻗쳐야 할 때가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 또한 게으름이고 욕심입니다.

 

이럴 때면 사다리와 몸의 무게 중심이 헝클어지게 되고

감나무 가지를 의지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 날도 감나무 가지를 잡고 손을 뻗치는 순간 가지가 꺾이면서

육중한 내 몸뚱이는 땅으로 곤두박질 치고 말았습니다.

 

떨어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내 밀어 땅을 짚었는지............

 

 

 

고속도로를 과속으로 달리고 있는 아내의 조바심을 모를 리 없건만 

아직도 멀었냐는 듯 고통스러운 신음을 쉼없이 토해냅니다. 

 

병원에 도착해 손목 뼈가 부러진 X-Ray 사진을 보는 순간

암담하고 착찹한 마음의 무거움이 몸으로 느끼는 통증의 무게보다 더 컷습니다.

 

일상의 일들에 있어

의도했던 것과는 정 반대로 걱정과 심려만 끼치는 일들을 참 많이 경험하며 삽니다.

이럴 때면 참으로 미안하고 답답하고 안타까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나의 처신이 신중하지 못한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해서

심난한 마음에 체찍질을 해 대곤 합니다.

 

철판으로 뼈를 고정해야 하는 수술을 해야 하고

남은 생을 사는 동안엔 추운 겨울에는 차갑고

비가 오려는 날엔 쑤시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하도 심난스러워

고민고민하다가 형님 친구분께서 운영을 하신다는 병원으로 옮겨 검사를 다시 했습니다.

 

 

 

뼈가 튼튼하기 때문에 철심을 박아 뼈를 붙게 하고 6주 후에 철심을 빼자는.........

처음 갔던 병원의 의사의 방법 보다는 귀가 번쩍 트일만큼 마음에 들었습니다.

6주만 참고 견디면..........

 

며칠 후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오자 마자

달력을 한 장 넘겨서 6주가 되는 날에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2016년 10월 21일.

 

한 낮 보다는 밤에 통증이 유난히 심합니다.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은 크게 다르지 않아

신음하며 뒤척일 때가 많습니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그런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의사의 설명이 있었음에도

불안한 마음은 통증이 심할 수록 더 해만 갑니다.

 

추석을 앞두고 온 손자녀석이 유별나게 나한테 엉겨붙어서

힘껏 안아보고 싶으나 마음 뿐입니다.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는 말을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녀석이 온 지 사흘 째 되는 날 하도 통증이 심해서

아내에게 귓속말로 "이번 추석 연휴는 왜 이렇게 기냐"고 했더니

이런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듯 손자녀석을 챙깁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지나가지 않는 게 없고 세월만큼 좋은 약도 없습니다.

무심한 것 같지만 결코 무심하지 않는 게 세월이 아닌가 싶습니다. 

 

달력에 그려진 동그라미,

"6주 후"가 바로 오늘입니다.

 

성할 때 마음대로 날아다녔던 것도 아닌데

오늘만 지나면 다시 날개를 단 듯 훨훨 날아다닐 것만 같은 마음입니다.

 

내 몸에 당연히 붙어 있었던 것들이

다치고 난 뒤에야 비로서 그 소중함을 그리고 고마움을 새삼 깨닫습니다.

내 몸에 붙어있는 게 손과 발 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새삼 깨닫습니다.

아내는 내게 있어 또 하나의 날개였다는 사실을.......

 

어제는 월급날이었습니다.

오늘은 일찍 병원에 다녀와서 그 동안 수고를 해 준 아내에게 맛난 점심이라도 사줘야겠습니다.

돈가스를 먹어야 할지 아니면 길거리의 붕어빵을 사야할지 고민스럽습니다.

아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것들이라서......

 

 

201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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