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기다림이라는 일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18. 1. 16. 14:10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원하든 원치않든 숱한 기다림을 하며 삽니다.

기다림의 일, 그중에서도 사람을 기다리는 일에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격하게 변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애가 끓는 일을 참 많이도 경험하며 삽니다.

 

 

봄을 기다리는 복수초(福壽草)

 

아이들이자랄 땐 집에 들어와야 할 시간이 넘어지면 처음 얼맛동안은 "곧 들어오겠지...."하며 기다립니다.

그러다 시간이 더 지나면 "들어오면 혼날 줄 알아라"하며 화가 납니다.

그러다 한참 더 지나면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 아니야?"며 걱정을 합니다.

그래도 안 들어오면 친구들 집으로 연락을 해서 아이의 소식을 묻습니다.

그리고 대문밖에 나와 서성대며 가슴졸이는...........

그러다가 늦게서야 들어오는 아이를 보며 묻지고 따지지도 않고 화풀이를 먼저 해댑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헐값이라서 볼 수 있는 감밭

 

 

오늘은 눈꽃이 잘 피었을 산엘 다녀오려고 새벽녘에 집을 나섰다가 아내에게 모진 타박을 들어야만 했던 날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지구온난화라는 신조어가 생길 무렵부턴 지는 알 수 없으나 내 어릴 적의 겨울만큼은 춥지 않은 겨울이 꽤나 오랫동안 지속된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2~3년 전부터 겨울이 겨울답게 느껴지는 건 아무래도 나이 탓인 게 틀림이 없습니다.

눈이 잦았던 고향을 둔 탓인지 눈이 와야 겨울이라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어릴적 내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풍경(장성)

 

지난 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이번 겨울엔 1월의 중순이 시작될 무렵에야 눈다운 눈이 내렸습니다.

한 번 쏟아지기 시작하는 눈은 12월에 내렸어야 했던 눈까지 사흘동안을 한꺼번에 퍼붓고 있습니다.

겨울이 삭막하다고는 해도 함박눈이 내려 쌓여있는 겨울의 풍경이야 말로 어떤 계절의 화려함에도 견줄 수가 없을 만큼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그중에서도 산속의 멋진 설경을 만날 때면 신선들이 사는 곳이 이런 곳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두어 시간 전부터 장비를 챙겨놓고서 여섯 시가 되기를 기다립니다.

산으로 가는 첫 차를 타기 위해서입니다.

겨울에 여섯 시면 한 밤중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현달이 게슴츠레 떠 있는 맑게 갠 하늘이 오늘 만나게 될 나무숲속 설경에 기대가 한껏 부풀게 합니다.

 

 

무등산 너덜겅의 설경

 

 

아내의 새벽 단잠에 방해가 될까 봐 밥 한 공기 강된장에 비벼 해치우고 고양이 담을 넘듯 집을 나섭니다.

버스가 시내를 통과해서 산으로 가는 동안 추위에 웅크린 몇몇 사람들이 오르고 내렸지만 어둠이 걷히기 시작할 무렵 종점에서 내리는 사람은 나 혼자뿐입니다.

영하 11도의 날씨라지만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아서 코끝만 시릴 뿐 견딜 만 합니다.

등산로엔 어제 다녀갔던 이들이 내어놓은 발자국 흔적들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 흔적들이 아니라면 장딴지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걷는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 가는 길

 

 

눈이 덮인 산길을 맨 먼저 걸을 때면 나중에 내 발자국을 따라올 이들 생각에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흔적을 내며 걸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등산할 때면 머리에 유난히 땀이 많아서 한여름 땡볕에서도 어지간해선 머리를 덮는 모자는 안 쓰고 다닙니다.

하지만 이날은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될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었기에 귀덥게가 달린 모자를 챙겨왔습니다.

산으로 들어설 때 살랑거리던 실바람이 고도를 따라 점차 칼바람으로 바뀌고 두 귀는 시리다 못해 깨어질 듯 아프기까지 합니다.

모자를 꺼내 쓰려는데 오르면서 흘린 땀이 머리에서 고드름처럼 얼어붙었습니다.

모자를 쓰자마자 고드름이 녹아 후줄근히 머릴 적시지만 시려서 아픈 귀는 금세 따뜻해져서 좋습니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로 가는 길

 

 

1.000m고지의 나무숲엔 내가 상상했던 만큼이나 아름다운 설경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카메라 셔터를 수차례 눌러보지만, 눈에 보이는 만큼 담아내기란 쉽지가 않아 휴대전화로 사진 몇 컷을 찍어 지인에게 보내고 숲속을 벗어납니다.

 

세찬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언덕배기(장불재)에 오르니 두툼한 구름 덩이가 산꼭대기를 휘감고 있는 광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산행을 시작한 지 두 시간만인 아침 아홉시, 구름이 걷힐 때까지 대피소에서 기다릴까 하다가 올라가서 기다리는 게 옳은 일이라며 정상을 향해 길을 재촉합니다.

 

 

장불재에서 바라 본 입석대와 서석대

 

이른 새벽에 산에 온 까닭은 등산하며 설경을 즐기려는 게 아니라 눈꽃이 핀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가기 위함입니다.

사진, 특히 풍경 사진을 즐기는 이들에게 있어서 기다림이란 익숙해지거나 당연한 일로 여겨야만 합니다.

구름과 빛과 때로는 바람까지.......

생각 없이 찍어서 좋은 그림을 얻는다는 것은 기적이나 요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입석대로 가는 길에 뒤돌아 본 장불재

 

 

대피소를 출발해 정상의 중간만큼 왔을 때 시간이 궁금해서 휴대전화기를 열었으나 전원이 꺼진 채 켜지질 않습니다.

차가운 곳이라 배터리 소모가 다 되어서 그렇겠지 싶어 별다른 생각 없이 주머니에 다시 넣습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산 아래에선 이 순간부터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입석대 설경 하나

 

입석대 설경 둘

 

 

세찬 바람에 구름이 걷혔다 덮혔다를 되풀이 합니다.

흘러가는 구름을 배경삼아 그림이 될만한 곳을 찾아 뛰어다니다 보니 심장은 요동을 치고 거친 숨소리는 세찬 칼바람과 같습니다.

 

 

입석대 위쪽

 

 

그리고 얼마 후 서석대 상단에 도착해서 한 등산객에게 시간을 물어보니 열 한 시 정각이라고 일러줍니다.

평소대로라면 대피소에서 20분이면 오를 수 있는 거리를 한 시간 반이나 헐떡거리며 뛰어다녔고 앞으로 한 시간 반쯤을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뛰어다니느라 땀으로 흠뻑 젖었던 몸이 금새 꽁꽁 얼어붙고 맙니다.

 

 

입석대를 지나 서석대로

 

 

십여 년 전 태백산에 새벽에 올랐다가 해가 뜨길 기다리면서 양쪽 엄지발가락이 동상에 걸려 수년 동안 고생을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시린 손은 옷 안으로 넣어 녹일 수도 있으나 시린 발은 대책이 없어서 제자리 뛰기를 쉼 없이 합니다.

 

세찬 바람에 구름의 흐름이 쏜 살과 같습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았다간 순간적인 상황을 놓칠 수도 있어 추워도 참으며 순간마다 셔터를 누르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서석대 설경 하나

 

서석대 설경 둘

 

 

손과 발이 깨질 것 같고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합니다.

십수 년 전 가을비를 흠뻑 맞으며 산행을 하면서 경험했던 저체온증의 증상을 다시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싶어 욕심 가득한 마음을 고쳐먹고 하산을 시작합니다.

 

 

서석대 하단 너덜겅에서

 

 

눈길을 헤집으며 뛰어다녔던 탓인지 두 시간 남짓의 하산길이 유난히도 힘이 들어 간간이 아픈 다리를 쉬면서 내려옵니다.

집에 오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내 혹시나 하고 전원 버튼을 눌러대니 꺼졌던 전화기가 다시 켜집니다.

 

 

서석대에서 장불재를 바라보다.

 

 

오후 255,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를 아내에게 전화하는 순간, "이 추운 날씨에 꼭두새벽에 혼자 산에 가서......"

타박이 아니라 울부짖음입니다.

비로소 내가 새벽부터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정신이 듭니다.

 

 

서석대를 내려와 중봉으로

 

 

기다림의 시간이 흐를수록 불길한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할 일입니다.

절벽에서 추락하면서 그 충격에 전화기도 고장이 났을 거라는 추측에서 부터 119에 실종신고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날 때까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있었다는 게 더욱 미안할 일입니다.

 

 

 

중봉으로 오르며 뒤로 돌아.

 

 

애꿎은 전화기를 탓하지만 좋은 변명거리는 아닙니다.

걱정하는 사람을 잠시라도 생각했더라면 등산객의 전화기라도 빌려 쓸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땐 미안하다는 말 말고는 다른 할 말이 없습니다.

 

 

중봉에서 서석대와 정상을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나를 기다리게 하는 일, 그중에서도 애간장 다 녹이며 기다리는 일 만큼은 하게 해선 안 될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던 하루입니다.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 다 했는데 뭐가 아쉬워?

나 지금 죽으면 여생을 혼자서 편하게 살 텐데 오히려 더 좋지 않겠어?"

나의 구시렁거림에 아내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지긴 해도 냉정히 따져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중봉에서 용추봉으로 하산하며 장불재를 바라보다.

 

 

하루만 더 있으면 한 이불을 덮고 산 지도 36년이 됩니다.

함께 살아왔던 36년 중에 무척이나 미안했던 하루이긴 해도 기다려 주고, 걱정해 주고, 무사함에 안도하는 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타박을 들으면서도 산 위에서 꽁꽁 얼었던 몸과 마음이 한결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2018,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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